지구에부담주지않는삶, 카페'슬로우'
상태바
지구에부담주지않는삶, 카페'슬로우'
  • .
  • 승인 2015.02.06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이태은 / 원불교환경연대, 서울교당


한울안신문과 원불교환경연대가‘즐거운 불편’과 동행했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사회는 작은 것과 느림의 미학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빠름과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어버린 ‘물질’의 길이 아닌 작고 단촐한 느림의 ‘정신’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일본을 통해 원불교 100년의 나침반을 돌려봅니다.
- 편집자 주



도쿄 외곽에 자리한 고쿠분지로 향하는 길, 한줄기 바람이 봄기운과 물기를 머금고 살랑대는 오후다. 한국보다는 조금 따뜻한 일본 겨울풍경은 한줄기 바람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되었다. 동경에서 마주친 일본사람들의 마스크 착용은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의 일상적 싸움을 상징하는 듯했다.


고쿠분지 카페‘슬로우’는‘나무늘보클럽’이 직영하는 일본 최초의 카페이다.‘ 느림’을세상에펼쳐큰흐름의‘운동’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1999년에 태어난 나무늘보클럽이 슬로라이프 운동을 시작하며 역점을 둔 것이 슬로우카페 운동이다. 나무늘보클럽은 카페 열풍이 몰아치던 2001년‘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생활’을 제안하며 슬로우카페 선언을 했다. 현재 일본에는 12개의 슬로우카페가 운영 중이다. 선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유기농카페와 코뮤니티카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갤러리를 겸한 하얀 방에서 만난 요시오카 대표는 14년 전 카페를 열면서 약속한‘즐거운 불편’이라는 컨셉을 지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요시오카 대표는 우리 일행과의 미팅 내내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슬로우카페를 성공시킬 수 있는‘키워드’임을 강조했다.



편안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고쿠분지 카페는 원래 버려진 공장이었다. 귀신이 나올 법한 흉물을 오이와 라는 스트로베일(짚을 벽돌같이 만들어서 사용) 건축가가 훌륭하게 리모델링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 오이와 씨는 나무늘보 대표인 스찌 신이치 선생의 형인데 생태 건축가로 유명하다. 오이와 씨는 카페공간에 있어서 스토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 버림받은 땅을 생명의 교육장소로 변화시킨 오시와 씨는 짚, 대나무, 흙 등을 건축에 이용하고 패시브솔라 즉 자연채광을 활용한다면 그토록 위험한 화석에너지와 핵발전 에너지의 사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쿠분지 또한‘버려진 공장부지의 재활용’이라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오시와 씨는 이런 작업을‘마이너스 유산을 플러스 유산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카페‘슬로우’는 돈을 벌기위한 카페를 지향하지 않는다. 생태적 삶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의식주를 담아내고있다.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옷, 양말, 모자, 장갑, 목도리 등 의복에 드는 재료는 주로 무농약으로 재배한 마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왜 면을 사용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면은 재배과정에서 농약을 많이 사용한단다.


카페공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다섯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공간은 공예품점이다. 각종 공예품과 옷가지 생활용품, 젊은 엄마들을 위한 아기용품이 많다. 이 공간에는 수억 원 들여 마련한 방사능 측정기가 있어 엄마들이 아기에게 먹일 음식을 가져와 언제든지 측정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두 번째 공간은 레스토랑이다. 40여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주위에 각종 공정무역 물품과 지역의 유기농 농산물을 진열하여 팔고 있다. 이 공간에서는 매주 금, 토요일 오후 3시 이후가 되면 다양한 슬로우라이프 행사가 열린다. 24일(토) 생태운동가 황대권선생님의 강연을 알리는 홍보판이 카페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세 번째 공간은 갤러리이다. 각종 미술품 전시와 가끔 영화도 틀어준다. 그리고 가끔은 작은 강연회와 회의실, 손님맞이 방으로도 사용되는 다용도 공간이다.


네 번째 공간은 유기농 빵집이다. 이 빵집은 카페‘슬로우’에 입점한 가게로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우리 일행의 방문으로 빵들이 다 팔려 판매생태계를 교란(?)시켰지만 당일 만든 빵을 다 팔면 장사는 끝인 셈이다. 만든 만큼만 파는 빵가게이다.


다섯 번째 육아교실에는 젊은 엄마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교육이 이뤄진다. 카페‘슬로우’의 스텝도 이용자도 젊은 여성들이 많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안전한 의식주를 걱정하며 카페‘슬로우’로 찾아들고 있다.


이 카페의 의사결정은 스텝을 포함한 외부매니저 3~4명이 한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는 4일 근무를 하는 등 스텝의 처지에 맞는 탄력적 운영도 눈여겨 볼 만한 시스템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자본주의적 소비방식에 대한 생각을 돌려놓았다. 빠른 효율만을 강조해왔던 방식에서 느림, 불편과 즐거운 동행을 할 수 있게 말이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 느린 것의 즐거움을 녹여내는 아름다운 얼굴들. 10명의스텝들은 즐거움으로 빛났고 카페입구에는 아름다운 현수막이 펄럭였다.
‘slow is beautiful(느린 것이 아름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