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읽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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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읽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3.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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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정도상작가의‘마음으로대종경읽기’



「대종경」은 우리말로 쓴 최초 경전입니다. 심지어는 고등종교의 최초 경전이지요. 원불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의 4대종단에 속하는 고등종교입니다. 「대종경」은 백년 전에 우리나라의 궁벽한 산촌에서 탄생했지만 지금은 세계 23개국에 교당을 가진, 보편적 종교의 길을 걸어온 원불교의 경전입니다.


「대종경」은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들었다)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예수복음」이나「예수경」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불경은‘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을 합니다. 또한 신약성서의 대부분도 요한이나 마태 등이 예수의 행적을 나름대로 기록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예수나 하나님이 직접 쓰거나 말하지 않았지요. 제자들이나 선지자들 그리고 기록자들이‘이와 같이 보고 들었다’라고 하며 썼고 편집했고 복음이라고 명명하였던 것입니다. 여시아문이든 제자들이 기록하고 편찬했든, 경전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경과 성경의 위대함은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대종경」은 소태산 대종사가 살아생전에 직접 말하고 행동한 것들을 편찬한 경전입니다. 더구나 아주 쉬운 표현으로, 누구나 알기 쉽게 써놓았습니다.


「금강경」「반야심경」「능엄경」등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원효의「대승기신론 소 별기」와「금강삼매경론」또한 우리말로 읽어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간신히 읽어내기는 했습니다만 참으로 버거웠습니다.


그에 비하면「대종경」은 초등학교 국어 책처럼 읽힙니다. 소태산은「대종경」을 편찬할 때‘장엄’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쓰잘 데 없는 수사나 수식을 피하고‘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경전을 편찬하라는 말이었지요. 여기에「대종경」의 위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백낙청은「대종경」을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중국어나 영어 혹은 산스크리트어나 히브리어로 쓰인 것만을 경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전히 지식 식민지의 백성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사대주의는 저 삼국시대로부터 시작하여 21세기인 지금까지 우리 역사와 정신사(精神史)의 큰 병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대종경」읽기의 연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나름의 해석도 덧붙일 예정입니다. 비록 나름의 해석이라고 했지만“읽기”에 충실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저보다 공부를 많이 하신 원불교의 교무님들과 여러 선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나만의 방식’으로「대종경」을 읽고자 합니다.


나는 철학자도 사상가도 아닙니다. 또한 윤리와 도덕에 철저한 사람도 아닙니다. 대학에서「대종경」을 가르친 적도 없고 그와 관련된 학위도 없습니다. 다만 소설가일 뿐입니다. 그러니 문학하는 사람의 눈길로「대종경」을 읽더라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내게 있어「대종경」읽기는 마음공부의 한 방편입니다. 열심히 마음공부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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