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렷한 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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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렷한 기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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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도상작가의 ‘마음으로대종경읽기’01-1


(대종경 서품1장)


원기원년 사월 이십팔 일에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원기원년은 1916년으로 소태산 박중빈의 나이가 스물여섯이 되던 해이다. 소태산은 일곱 살에 처음으로 자연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의심이란‘이건 뭐지?’‘왜?’와 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호기심이 깊어지면 의심이 된다. 의심이란 진리에 대한 첫 갈증이다. 열한 살에는 그동안 이어왔던 모든 의심을 풀기 위해 산신령을 만나기로 작정하고 산속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예수는 열두 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예수는 그 토론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 율법학자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열두 살 꼬마가 책을 많이 읽고 율법에 대해 공부를 아주 많이 한 학자와 토론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왕자였던 석가모니도 유년시절부터 생로병사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열여섯에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뒤 스물여덟에 홀연히 출가하였다.


대각(大覺)은 오랜 수행 끝에‘문득 크게 깨닫는 점오(漸悟)’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깨닫는 돈오와는 구별된다. 예수나 석가모니, 달마나 원효 그리고 소태산은 치열한 정진과 고행 끝에야 비로소 구극(究極)의 깨달음에 이르런 성인이며 부처이다. 석가모니는 앞부처이고 소태산은 뒷부처인 것이다.


석가모니와 예수 그리고 소태산은 청년 시절에 대각하였다. 대학과 대학원, 유학까지 마친 제도권 인텔리가 아니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혹은 세상만사 산전수전 풍파를 다 겪거나 석학으로 이름을 날리며 유명해진 교수 출신도 아니다. 도서관에 쌓여 있는 책이나 팔만대장경을 공부하거나 독파한 것도 아니고 문장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크게 깨달았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만물의 본질에 대해 직접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들은 사물과 현상의 구성과 원리에 대해 자연과학적이거나 인문사회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지식을 쌓은 것이 아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그저 전면적으로 생과 사의 본질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청춘의 순수성과 격렬함, 실존을 내던지는 고행과의 전면적 격투를 통해서 죽음 근처까지 갔다가‘마침내 문득 전체적으로’온 그것. 그것이 바로 대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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