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호흡으로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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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흡으로 행복찾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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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관응 교무 / 경남교구 신현교당


비가 며칠 온 뒤라 떨어진 벚꽃들을 보기 위해 거리를 거닐어 본다. 차 위에도 도로 위에도 운치가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을 때마다 꽃의 에너지를 전달 받는다. 꽃잎도 낙화하면 그 에너지가 다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아주 가는 생명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후 그 꽃잎 에너지는 대지와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이런 에너지 체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치도 마찬가지다. 쉽게 되어지지 않으니 꾸준히,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 호흡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된다. 그 체험이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나의 에너지가 연결된다. 자연은 자연, 나는 나가 아니라 한 몸이라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한동안 호흡의 충실함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호흡을 하면 그냥 되는 줄 알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죽치고 앉아 있으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공기를 들이쉬고 내쉴 수 있으니 그러면 되는 줄알았다. ‘이 생에는 호흡만 잘 하고 가는 것으로 정하자’며 자념을 심기도 했다.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다. 그것이 최선일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날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마조 도일 선사가 남악 회향 화상 회상에서 공부할 때의 일화가 생각났다. 기와를 갈아 거울 만들기였다. 기와만 갈고 있었다는 사실에 무안해졌다.


호흡은 한다고 했으나 에너지의 실체를 환연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 보기만 했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 방법을 찾으니 한 줄기 빛이 보였다. 꼬였던 실타래가 풀려 나갔다. 진정으로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단전주를 통해 있는 호흡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들이 쉬고 내쉬는 반복이 아니라 그 호흡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며칠 전 김해 모 병원에 병고로 입원해 있는 부친의 숨소리를 들어 보았다. 숨소리가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고령인 측면도 있기는 하다. 부친과 간단한 이야기를 하면서 손을 잡아 보았다. 이내 호흡의 편안해 졌다.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결국 행복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한 호흡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에너지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호흡 깊이를 더 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전주선법으로 에너지를 소통시켰을 때 나타나는 효과다.


교단 내에서도 단전주선법을 중요하다고 권하고 에너지의 흐름을 잘 느낄수 있는 방안을 찾고는 있다. 하지만 그 후일담인 수증일여(修證一如)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래도 계속 권한다. 보여주지 않고‘이렇게 좋은 법인데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안 하면 또 권한다. 그 권하는 공부인의 수증일여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 중지다. 물어볼 수가 없다. 이 분위기가 교단 정서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대종사께서는「대종경」실시품 2장에서 그 방안을 제시했다. 대종사께서 하루는 실상사에 갔다가 마침 노승 두 사람이 한 젊은 상좌에게 참선(參禪)을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아니한다 하여 무수히 꾸짖고 있는 모습을 본 후“저 바위 속에 금이 든 줄을 알았거든 내가 먼저 채굴하여다가 그것을 광채 있게 쓰면 사람들이 나의 부유해진 연유를 알고자 하리니, 그 알고자 하는 마음의 정도를 보아서 그 내역을 말하여 준다면 그 사람들도 얼마나 감사히 그 금을 채굴하려 할 것인가. 이것이 곧 사람을 제도하는 묘방" 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 법문을 공부인들이 정신 차려 받들어야 한다. 공(空) 도리보다 단전주선법으로 실제를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단전주선법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그래야 재가, 출가들이 선을 재미있게 할 수있는 공부 분위기가 확산되고 호흡을 통한 행복 찾기가 계속 될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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