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신神이 오셨다”
상태바
“네팔에 신神이 오셨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6.03 0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강명권교무의 네팔지진피해현장리포트①



5월 24일(일) 우리 일행(세계봉공재단, 삼동인터내셔널, 원불교재해재난구호대)은 한국을 출발하여 다음 날 네팔에 도착했다.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 산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급히 챙기고 새벽 6시에 목적지를 향해 출발 했다. 포장도로를 1시간 30분을 지나고 나서 산길로 들어섰다.


옆은 절벽이요, 길은 비포장, 구비구비 산길은 끝이 없다. 보통 해발이 1300m가 넘는다. 그런 길 위의 산중턱에 집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낭떠러지 길을 건너 가면서 네팔 출신 원성천 교무(삼동인터내셔널)도 무서움이 몰려 왔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을 재해 현장을 찾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산행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중간에 운동화도 없이 슬리퍼만 신고 심지어는 맨발로 산에서 내려오는 주민들을 보았다. 주민들은 큰바구니나 긴 끈을 가지고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보니, “쌀을 준다고 해서 어제 아침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아기를 큰 광주리에 담아서 오는 엄마들이 종종 보였다.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보니“쌀30kg 받아서 집에까지 걸리는 시간이 3일이 걸린다”하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아이를 집에 둘 수가 없어서 업거나 광주리에 아이를 태워온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만부’지역에 쌀을 받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700여 명이나 되었고 쌀과 집 수선용 양철판을 가지고 온 우리 일행을 아침부터 늦은 밤 8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말에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도착하자마자 주민들이 큰 박수와 함께 두 줄로 서서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면서 환영을 했다.


30kg 정도 되는 쌀을 받는 집과 피해 상황이 조금 나은 집은 15kg를 받아서 가는데 우리가 도착할때까지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니 그저 미안함에 할 말을 잊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쌀 500포대와 양철판 1200장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미안한 마음에 인사도 못하고 몰래 도망치듯 대표자에게만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아직도 지진으로 길이 끊어진 곳도 많고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사람들과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 많다고 하면서 그 마을 현황을 이야기하기에 원성천 교무와 인연이 있는 쌀가게 주인과 연락을 하여 쌀 1,500포를 구입을 위해‘소티’라는 곳으로 내려왔다.


우리 일행은 안전한 곳으로 내려와 숙소를 찾아 봤지만 제대로 씻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형편이 좋은 다른 구호 팀이 숙소 전체를 세놓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고 우리는 밥을 먹은 식당을 치우고 나무 침대를 놓고 잠을 잤다. 아침에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다시 배분을 위해‘소티’로 왔다.



배분을 시작하려고 하니 아이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6.25때 피난민 같은 복장의 수많은 지역주민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기다리거나 배분을 기다리는 동안에 요기를 하거나 쉬면서 우리의 배분을 무한정 기다리고 있었다.


쌀 1,385포(41,550kg)를 가구당 30kg씩 1,385가구에게 온종일 배분하고 다시 숙소인 알켄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배분에 함께한 지역의 한 주민이 말하기를“네팔에 신(神)이 와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말을 마을사람들이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며 기분이 좋으면서 한편으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은 이 쌀을 짊어지고 3일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과 산사태가 나서 아직도 못 내려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미안함에 또 미안함이 가득하게 넘칠 뿐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