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시대, 개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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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시대, 개벽의 시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7.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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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홍석원(석현) 중앙일보 회장 강연(2)



# 문화와 행복


그러면 이제‘문화란 무엇이냐’질문을 하게 되겠는데, 오늘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문화를 넓게 정의를 하고 싶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결국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인간 존재가 뿜어대는 모든 양태가 아니겠는가’이렇게 보고 싶습니다.


성리학에서는 주자가‘성즉리(性卽理)’라고 했고 왕양명도 비슷한 이야기지만‘심즉리(心卽理)’라고 한다면, 거기에 비추어 저는‘문화즉리(文化卽理)’, 문화라는 것이 결국 우리의 뿌리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불자(佛子)로써 귀한 인연법에 따라서 생을 받고 태어납니다. 생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가꾸고, 참 멋과 즐거움을 향유하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 한사람 존재의 뿌리에서부터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행복하고 싶다’라고 하는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달라이라마, 이 분은 늘 행복론(幸福論)을 이야기합니다. “행복하자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에 나의 행복이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의 행복도 소중하다.”결국, 우리가 행복하게 살자는 것인데 현실은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고통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그래서 평탄한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죠. 세상에는 대통령도 있고 천하 제일의 부호도 있고 대문호도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큰 사람일수록 정말 파란만장한 애환이 있다고 봅니다.


# 다극화 시대의 개막


문화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건강한 삶, 행복한 삶, 멋지고 즐거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런 다양한 욕구를 여러 가지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5년 전부터‘월드컬쳐오픈(world culture open)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결국‘문화’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가까워 질수 있고, 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서로를 즐기며, 이 고해의 바다 속에서 그래도 조금의 위안을 얻는 그런‘하나의 도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싸이’가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아프리카, 남미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문화의 힘입니다. 과거의 힘과의 힘이 대결하는 시대에서 상생과 조화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대종사님이 그리고 증산선생 같은 분도 말씀 하셨지만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 가는 하나의 증거물로 문화의 힘이 발현되는 시대가 들어왔다고 봅니다.


요즘 저에게 어느 종교에서 책을 보내와서 읽어보니 후천시대에 사람이 몇 십만이 죽고 몇 만 명만 살아남는‘공갈협박’을 하는 문서를 봤는데 저는 그런 것이 후천의 시대가 아니라 후천시대는 칼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원불교 교전」을 보면 곳곳에 나오지만, 남성의 시대에서 여성의 시대로, 또 과거의‘양극화’,‘ 일극화’양대 진영의 시대에서 이제 다극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 부처님이 지금 계신다면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원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요즘 서양에서‘명상’이 굉장히 유행을 합니다. 특히‘마음챙김’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서양의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을 합니다. 영어로는‘마인드풀니스(mindfulness)’우리말로는 마음챙김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인 신문인‘파이넨셜 타임즈’에서도 매주 한 칼럼씩 나올 정도입니다.


그 인터넷 신문 대표는 제가 불자인줄 아니까 마음챙김에 관한 글을 하나 써달라고 해서 어렵게 여겼다가‘부처님이 지금 계신다면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그런 설정 속에서 글을 쓴 건데 좋은 반응을 많이 얻었습니다.


거기서 얘기한 것 중에 하나가 과거 선천 시대의 장군의 시대, 칼의 시대, 정치의 시대에서는 특히 키신저 같은 사람은 모든 국제관계를‘balance of power, 힘의 균형’으로 봅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가 계신다면 남북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


제시한 것을 하나의 이상주의적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balance ofperspective, 관점의 균형’, 우리가 하나의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든‘힘의 균형’에 대한 서양의 논점이라는 것이 결국‘체스(서양장기)’의 관점입니다. 그런데 우리 동양에서 얘기하는 것은‘바둑’입니다. 바둑에도 물론 승패는 있지만 왕을 잡아서 완승하는 건 없거든요. ‘열집 대 백집’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살아있는 상생의 문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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