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鼎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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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鼎의 부처님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7.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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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도상작가의‘인문학으로대종경읽기’04-2 ㅣ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그 자리에서 정괘(鼎卦)인‘화풍정(火風鼎)’을 펼쳐 있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는데, 소태산이 송규에게 정산이라는 법호를 내린 이유가 그곳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주역」의50번째괘인솥(鼎)에 대한 왕필의 주석을 일부를 발췌하여 그대로 옮긴다. 더하고 뺄 것이 없는 위대한 주석이다.


“혁(革)은 옛 것을 버리는 것이요, 정(鼎)은 새 것을 취하는 것이다. 새 것을 취하여 그 사람에 맞게 하고, 옛 것을 바꾸어 법제가 정돈되고 밝아진다. 길한 뒤에야 형통하므로 먼저 크게 길한 다음에 형통하다. 정이라는 것은 변화를 완성하는 괘이다. 삶는 것은 솥이하는 일이다. 혁은 옛 것을 버리고 정은 새 것을 이루므로, 삶아 익히고 맛을 내는 그릇이다. 옛 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는데 성현이 없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인재들이 배양되면 자기는 작위하지 않아도 일을 이루므로, 공손하면서 이목이 총명한 것이다.


응(凝)이라는 것은 엄정한 모습이다. 정은 새 것을 취해 변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혁은 옛 것을 버리고 정은 새 것을 완성한다. 자리를 바로 한다는 것은 존비(尊卑)의 차서(次序)를 밝힘이요, 명을 엄정히 한다는 것은 교화의 명령을 엄정하게 이루는 것이다.”(왕필 지음, 임채우 옮김, 「주역」, 도서출판 길, 2013년, 384~385쪽)


‘솥’에 대해 이처럼 우주적이며 철학적인 해석을 내린 문장은 일찍이 없었다. 뭇 생명의 먹이를 삶아내고 담아내는 위대한 도구가 솥인 것이었다. 소태산이 송규에게 정산이라는 법호를 내린 것은 원기4년(1919년) 음력 7월 26일의 일이었다. 그 후로 정산 송규는 소태산의 뜻을 받들어 원불교의 기틀을 잡는데 전력을 다했다.


바로 여기에 소태산이 송규에게 정(鼎)을 내린 근본이 있다고 생각한다. 솥 정(鼎)에 칼 도(刀)를 더하면 칙(則)이 된다. 칙(則)이란 솥에 칼로 문자를 새기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패(貝)는 조개란 뜻이 아니라 정(鼎)의 약자이다. 솥에 칼로 문자를 새긴다는 것은 진리의 법칙을 세운다는 뜻이다. 소태산의 말씀을 송규의 몸, 즉 솥에 새기라는 뜻도 담겨 있다. 정산종사는 소태산의 말씀을 자신의 몸에 새겨 원불교의 기틀을 튼튼하게 기초했다.


김용옥은 노자의「도덕경」7장을 해설하면서“하늘은 하늘로서 하늘이 되는 것이 아니고, 땅은 땅으로서 땅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땅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땅은 하늘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하늘 속에 땅이 들어 있고, 땅 속에 하늘이 들어 있는 것이다.” (김용옥, 「노자와 21세(2)」, 통나무,2013년, 14쪽)


“天長地久(천장지구),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천지소이능장차구자), 하늘과 땅이 길고 오래 갈 수 있는 까닭은 以其不自生(이기부자생),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으므로 故能長生(고능장생), 능히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是以(시이) 그러므로 聖人後其身而身先(성인후기신이신선), 성인은 몸을 뒤에 두지만 몸이 앞서게 되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몸을 밖에 두기에 몸이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非以其無私耶(비이기무사야?)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故能成其私(고능성기사). 그러기에 능히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소태산은 정산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소태산이 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정산을 만나서야 비로소 일원의 부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땅을 만나지 못하면 법계가 아닌 허공일 뿐이고, 땅은 하늘을 만나지 못하면 생명이 없는 황무지일 뿐이다.


하늘에 응한 소태산은 땅에 응한 정산을 만나서야 비로소 십인일단의 교화단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천과 지로 만난 소태산과 정산은 원불교를 천장지구(天長地久)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소태산과 정산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솥의 부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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