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떻게 살아 오셨어요?
상태바
할머니, 어떻게 살아 오셨어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7.30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요즘청년 ㅣ 조세웅 / 둔산교당, KAIST 원불교 교우회


경남 진주에 사시는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28년째“쑤이할매 (순이할매)”로 불리신다. 어릴 때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대신‘창순이’(내 속명)를 데리고 다니면서 키우는 것이 할머니의 일과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도 할머니와는 무척 친근하게 지낸다.


TV조선을 애청하시는 할머니께서는 나를 볼 때면“야당 의원들은 왜 이렇게 대통령을 괴롭히냐”고 투덜거리신다. 그러면 나는“야당도 먹고 살아야죠”라며 웃어넘긴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다거나, 딸보다 아들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하신다. 또래 친구들이 들으면 기겁할 얘기지만 내겐 법문마냥 소중한 말씀이다. 해방 및 전쟁 직후 미국의 도움 없이 살 수 없었던 시절을 할머니께서 얼마나 힘들게 지내오셨는지, 아들만 대접받던 시대에 딸만 셋 있는 집안에 막내로 태어나 얼마나 설움을 겪으셨는지, 조금이나마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같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할머니 역시 그렇게 험한 세월을 살아오시고도,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묻곤 하신다. 동네에 소문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셨으면서도 우리에게는“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남자도 설거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할머니 말씀을 편견 없이 들을 수 있는 것도, 할머니께서 이렇게 먼저 마음을 열어 주시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어른들의 말씀을 들을 때도, 우리 부모님이다, 우리 할머니다 생각하고 들으면 그 진심이 더욱 잘 느껴질 때가 많다.


일상에서 사회에서 접하는 갈등의 대부분은 소통의 부재에서 일어난다. 선생님과 학생, 고용자와 노동자, 의사와 한의사, 과학자와 종교인, 노인과 청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입장과 감정이 있고 반대쪽 사람들을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나 역시‘원불교 교도’로,‘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기타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에 둘러싸인 한 사람으로, 입장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대항하는 마음이 쉽게 일어나곤 한다. 소통이 늘어난다고 상대방과 생각이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의 생각을 더 많이 공유하고 이해가 깊어진다면 내 입장을 얘기할지언정 입장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애국자도 있고,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다”는 연설로 국민들의 마음을 모았다. 대종사님께서는 교단을 감시하고 훼방을 놓는 일본경찰들 마저도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따름이라며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미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떨까. 먼저 교당 안에서 교무님과 교도님들, 청년들과 어르신들, 교당을 큰 건물로 이사하고 싶은 분들과 지금 건물을 유지보수 하고 싶으신 분들, 생각이 다른 분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눌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세계 속에서 생각이 다르고 갈등, 반목 하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원불교였으면 좋겠다. 스님과 목사님이 교당에서 대화하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잡고 법회에 나가고, 재벌과 노동자가 교법으로 대화하며 서로 양보하는 모습, 원기 백년대에 더욱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