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탈핵 할매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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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탈핵 할매의 편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10.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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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와무라 카즈요



원불교환경연대와 여러 지역 탈핵활동가 덕에 한일반핵교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여행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릎도 걱정스럽고 지방의 주부활동가일 뿐인 제가 나설 무대인가 싶어 주저했지만, 신의있는 20년지기의 초대였기에 방한을 결심했습니다.


핵발전 문제를 만난 것은 1977년. 시모노세키에서 35킬로 떨어진 동해 쪽에 핵발전소 계획이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핵발전소를 4개째 막고 있습니다만, 일본은 1966년 핵발전소 첫 가동 후, 후쿠시마 대형사고 이전까지 54기나 지어버렸습니다. 한국도 1978년 고리1호기 운전 개시 이래 24기나 있습니다. 대형 핵사고가 일본에서 먼저 나면서 여러분께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과 한국은 일의대수로써,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바로 영향을 줍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운동과제가 있지만 반핵이라는 과제에 38년이나 맞서며 아직도 떠날 수 없는 것은 핵이야말로 생명 그 자체의 부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핵문제로 한국을 방문한 지 20년, 되돌아보니 그 교류의 축적이 정말 보물 같습니다.


20년 전 처음 찾은 핵발전소 현지가 영광이었는데, 이번에 주 1회 군청에서 핵발전소까지 22킬로 생명평화 도보순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미노세키핵발전소 계획을 반대하는 이와이시마에서는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30분 정도 골목골목 행진합니다. 벌써 1200번이 넘었습니다. 영광과 이와이시마, 마음은 하나입니다.


주민운동 중에 부안처럼 격렬한 싸움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반핵운동의 성지라고 생각하는 부안에서 중심적 리더였던 원불교 교무님과 강하고 부드러운 분들과 재회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핵폐기장 예정지였던 위도에 3번째 방문했지만, 당시 핵심활동가인 서대석님은 돌아가셔서 주인 없는 집 앞에서 이번 여행의 유일한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삼척과 영덕 땅에도 안아주고 싶은 친구가 생겼습니다. 운동은 확산되고 있지만 앞으로 엄혹해질 반대운동을 예감하며, 타국의 일개 노인인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애가 탑니다.


서울에서는 믿음직한 젊은 여성이 이끄는 녹생당 가두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 중 18년 전 일본 집회에서 만난 한 청년은 현재까지 계속 활동하고 있어 기뻤습니다. 또 시청 광장 귀국전야 생일파티에 젊은이들과 멀리서 와 준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귀국길에 들른‘하자학교’, 북소리 합주와 춤으로 열렬히 환영하고 당당하게 교내를 안내해준 학생들한테 감동했습니다. 귀국 이틀 후‘금강산가극단’공연을 보았습니다. 시모노세키에‘재일한국 · 조선’사람들이 많은데 한반도 분단처럼 국적을 나누고 있습니다. 매년 가극을 감상하며 느낀 공연의 진수는‘한민족의 마음과 통일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한 9일 동안 단결, 연대, 우정, 자애, 감동으로 가득 차는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번역 : 김신우 교도
(송천교당, 원불교 탈핵정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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