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탈핵 할매의 편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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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탈핵 할매의 편지’②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10.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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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토 기요코



강해윤 교무님, 부안투쟁의 어머니 김인경 교무님, 이태옥님, 김복녀님!


일본에 돌아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러분이 너무 그립습니다. 어디를 가든 따뜻한 얼굴로 맞아주셨습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작 9일 머물렀지만 가는 곳곳에서 서로 공감하며 기쁨과 분노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은, 살아감의 환희 그 자체로 통했습니다.


어디를 가나“해피 버스데이!!”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노래는‘붉은 촛불처럼 남은 인생을 빛내며 사세요’라는 격려처럼 생각되어 귀국하는 날 제 마음은 80 빼기 9, 그러니까 71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귀국 다음날 후쿠시마로 날아가‘아동탈피폭재판’에서 해야할 역할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장없이 잘 했습니다. 원불교 여러분한테 받은 활력이다 싶어 고마웠습니다. 그 후에도 상당한 일정을 소화하며, 반핵, 반전 싸움에 새로운 마음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부안주민 투쟁이 저를 한국의 포로로 만들었습니다. 주민투표가 마음에 걸려 2년 연속 부안에 갔는데 원불교 이름을 안 것도 그 때였습니다. 이번에 당시 싸운 주부 몇 분을 만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교무님과 함께여서 싸울 수 있었다’고 회상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듣고 보니 부안에서 받은 2005년도 달력에는 촛불 들고 숙연하게 연좌농성하는 대군중 사이에 젊은 날의 김인경 교무님 모습이 있었습니다. 선두에 함께 앉아 계신 문규현 신부님은 만나지 못해 아주 유감이었습니다만. 아시아 반핵투쟁 역사에서 영원히 회자될 혼이 담긴 품격 높은 부안 투쟁. 원불교는 그 기억과 함께 제 안에 있습니다.


영덕에서도 주민투표에 대비하여 염천 땡볕 아래 호별 방문하시는 원불교 교무님을 만났습니다. 영광에서는 핵발전소까지 매주 22㎞(!) 생명평화길을 순례하시는 중심에 다망하신 강해윤 교무님이 있어 감동했습니다. 김인경 교무님 후계자가 되어 있었군요!



100개 햇빛교당 운동, 탈북 아이들을 가르치는 앞선 교육, 등교거부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활동, 모두가‘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한 진정한 의미의 선진적 활동임을 확신했습니다. 이념을 입으로 제창할 뿐인 게 아니라 모두 실천과 함께 있더군요.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하자면 행복을 방해하는 것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앞장서서 곤란을 떠맡으려는 자세가 젊은이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반핵운동이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신적인 품격을 갖추고 있음은, 분명 종교적인 강한 신념에서 생긴 깊은 인간애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렴풋한 제 직관입니다.


제 남편도 자기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종교적인 사람이었지요. 인간 행복과 양립할 수 없는 핵발전소를 진정으로 미워했습니다. 약하고 힘 없는 저이지만, 그이와 함께 하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위대한 동지를 만난 기쁨과 함께 숙제도 많이 받은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연대가 더 강해질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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