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 서원문」의 구조와 적공積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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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 서원문」의 구조와 적공積功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11.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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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길튼 교무 / 나주교당


‘일원상 서원문’은 독송문의 요청에 따라 원기23년(1938) 11월경에 소태산 대종사께서 직접 지은 경문으로, 306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한 공부관(신앙·수행론)과 서원관이 담겨 있습니다.


원기23년(1938) 11월 동선에서 <회보49호>에‘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원기24년(1939)《 불법연구회근행법》에‘심불일원상서원문’으로 발표되었으며, 원기25년(1940)‘ 심불일원상서원문’이란 제목을‘일원상서원문’으로 고치며,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 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을 입지아니하기로써’로 수정됩니다. 이는 제목과 내용을 간결히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수렴하신 것이며, 그 내용이 원기28년(1943) 3월에 편수된《불교정전》에 삽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원상서원문」의구조적진리



「일원상 서원문」은 일원상 진리의 내역과 이를 바탕한 서원문으로 양별할 수 있습니다. 즉“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까지는‘일원상 진리의 내역’이라 한다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은‘일원상의 서원’이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원상 진리의 내역’부분은 일원상진리 당체의 절대계의 차원이라면‘일원상의 서원’부분은 현실계의 차원으로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한 삼학수행이요 사은보은이라 할 것입니다.



‘일원상 진리의 내역’은 무시선법의 ‘분별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는 자리라면‘일원상 서원’부분은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인 것 입니다.


‘일원상 진리의 내역’은 문득 깨달을 수 있는 완성의 세계라면, ‘일원상 서원’의 세계는 끊임없이 실천하고 적용해야 되는 진행형의 세계입니다.



‘절대계의 일원상 진리자리’는 원래 구제되어 있는 자리로 깨달을 것도 없고 본래 닦을 것도 없는 무오무수(無悟無修)의 시공을 초월하고 기질을 초월해 있는 단계가 없는 자리라면, ‘현상계의 서원자리’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구제를 해야 되며 시공 속에서 기질 속에서 구체적으로 천각만수(千覺萬修)해야 하는 단계가 있으며 상황에 따라 처방이 다른 천통만통(天通萬通)의 자리입니다.


현실에서 서원하는 차원은 능숙할 수는 있어도 저절로 완성되는 세계가 아닙니다. 현상계의 차원은‘부지런 딴딴’해야 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지성(至誠)으로 정진적공해야 되는 노력의 세계이며‘∼까지’해야 되는 천통만통(수행품 43장)의 세계인 것입니다.


현상계의 현실은 악이 늘 도사리고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의 습관에는 악이 완전히 없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습관은 악을 최소화하거나 발현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의 세계인 것입니다. 지금 악이 없다는 것은 악이 없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지 악자체의 에너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정진성이 약화되면 언제든지 악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품은 오염을 초월해 있습니다. 오염을 초월해 있기에 그 반대급부로 오염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마치 빛이 있기에 밝음과 어둠이 생길 수 있듯이 본래 선악 염정이 없는 소소영령한 영지인 우리의 본성이 있기에 선악과 분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원리편 11장) 그러니 우리는 항상자성을 회광반조하여 영지로 경계를 비추어 경계를 굴리고 가야합니다. 그 영지가 외경에 쏠리지 아니하고 오직 청정한 혜광이 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일원상서원문」의구조와적공


「일원상 서원문」의‘내역’과‘서원문’의 두 구조는 대종사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는「일원상 서원문」의‘내역’인 절대계에 거주하면서‘서원문’인 현상계에 출근해야 합니다. 만일 절대계의 일원상 진리 내역 당체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어찌해도 상관없는 무감각한 돌맹이와 같을 것입니다. 또는 절대계의 공급이 없이 현상계의 서원에만 머물러 있으면 출렁이는 파도처럼 불안하고 허망할 것입니다.


「무시선법」의 선(禪) 공부처럼 절대계의 성품을 오득하여 현실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마음의 자유는 수양력이 필요한 곳에 수양력을, 연구력이 필요한 곳에 연구력을, 취사력이 필요한 곳에 취사력을 공급하여 마음의 평화와 지혜와 은혜를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은「일원상 법어」에서 큰 원상으로「일원상 서원문」의‘내역’부분을 대조토록 하였다면, 작은 원상 6개는「일원상 서원문」의‘서원’부분의 용심(用心) 유무를 체크 대조토록 하였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절대계의 도솔천과 현상계의 왕궁가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불일불이(不一不二)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의두요목 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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