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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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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예식으로 추석지내는 ...이성기 교도 가족
소태산의 종교관
원불교에 있어서 종교 간의 대화원리는 소태산의 종교관에서부터 교리적인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법위등급 중 ‘종사위’는 살아있는 인물의 최고위로 종법사 피선거권을 부여받는데, 그 요건에는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며’라 하여, 종교 간의 대화에 그치지 않고 공동선의 추구를 위해 종교간 공존하고 협력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태산의 가르침을 일원주의, 혹은 일원철학으로 부를 수 있다. 원불교에 구세이념으로 독창적인 교의사상이 있으나, 다종교 사회에 있어서 종교 간의 대화이념은 이 일원주의에 입각해 전개되고 있으며, 종교다원주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 교리적 기반이 갖추어진 셈이다. 정신개벽을 외친 그는 만종교 만사상이 혼재하는 이 세상을 건지기 위해서는 이미 한 종교의 좁은 울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소태산의 법문 가운데 용화회상과 미륵불의 출세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박사시화 여쭙기를 “지금 어떤 종파들에서는 이미 미륵불이 출세하여 용화회상을 건설한다 하와 서로 주장이 분분하오니, 어느 회상이 참 용화회상이 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말은 아니 할지라도 오직 그 회상에서 미륵불의 참 뜻을 먼저 깨닫고 미륵불이 하는 일만 하고 있으면 자연 용화회상이 될 것이요, 미륵불을 친견할 수도 있으리라.”』
소태산에 따르면, 용화회상을 일컫는 진정한 종교가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사고는 일방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즉, 종교간의 공존·협력이념이 원불교의 교체(敎體)로 체계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동윤리와 종교적 협력의 실천
소태산의 구세이념은 열반(1943)후 정산(송규, 1900~1962)에 의해 계승된다. 광복을 전후한 변동기에 그는 교제를 정비하며, 오늘의 원불교 틀을 확립했고, 열반에 앞선 1961년 4월, 소태산의 일원주의에 바탕해 삼동윤리를 선언했다. 삼동윤리란 동원도리(同源道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을 말하며,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로 해석된다. 이후 삼동윤리는 원불교의 종교협력운동에 있어서 상징이 되어 있는데, 정산은 이렇게 말한 배경에 대하여 “삼동윤리는 곧 앞으로 세계인류가 크게 화합할 세가지 대동(大同)의 관계를 밝힌 원리니, 장차 우리 인류가 모든 편견과 편착의 울 안에서 벗어나 한 큰 집안과 한 큰 권속과 한 큰 살림을 이루고, 평화 안락한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길 기본 강령이니라”고 밝히고 있다.
정산은 소태산이 설한 일원주의란 대세계주의낙원(大世界主義樂園)이며, 이를 위해서는 교단주의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삼동윤리의 첫째 강령은 同源道理니, 곧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삼동윤리의 둘째 강령은 同氣連契니, 곧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삼동윤리의 셋째 강령은 同拓事業이니, 곧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이러한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는 그 법을 이은 대산(김대거, 1914~1998)으로 계승되면서 구체적인 종교대화, 그리고 종교협력운동으로 전개된다. 그는 1965년 이후 한국종교계에 상호이해의 풍토조성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한다. 당시 대학생 종교제(원광대), 6대종교 이해의 모임, 그리고 한국종교인협의회 창립 등에 교단의 참여와 역할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며, 그 자신은 ‘종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세가지’(1966) 등의 법문을 행한다. 그리고 1970년 부터는 종교협력운동의 일환으로 종교연합(UR,United Religions)운동을 제창한다. 국내외 종교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종교관련 각종 국제대회에 메시지가 전달되고, 1981년에는 ‘세계종교연합’ 설립을 선포했다. 국내외 종교지도자들과의 교류가 빈번해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세계종교연합은 종교인들의 대화와 협력에 의해 UN과의 동반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이며, 이러한 염원이 1986년의 아시아종교평화회의(ACRP. Asian Conference on Religion and Peace) 서울유치 등으로 이어진다. 그가 열반게송으로 남긴 ‘하나의 세계’법문은 이러한 실천이념을 함축하고 있다.
1994년 대산의 법통을 이은 좌산(이광정)종법사의 경륜도 같은 흐름이다. 1996년의 세계종교자유연맹 한국대회 유치나 유엔 NGO법문 등이 이를 말해준다.
이렇게 보면 원불교의 종교대화와 종교협력운동은 소태산에서부터 대를 계승하면서 원리와 방법이 구체화되고 또 실천화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성격을 지닌다.

*이 내용은 양은용 교수의 강의 내용중 ‘소태산의 종교관과 대화원리’부분을 발췌·요약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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