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교당
상태바
사직교당
  • .
  • 승인 2005.02.1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원가족으로 행복을 가꾸는 ..나성훈 교도
“공부만큼은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해도 늘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나성훈 교도(68세, 사직교당)는 항시 교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왔다. “살면서 어려운 고비를 피할 수는 없죠. 하지만 기도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풀지 않고, 쉽게 풀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입교는 했어도 그저 행사교도였다는 나성훈 교도는 1976년, 본인의 돈 뿐 아니라 시아버지의 돈까지 빌려주고 돈을 고스란히 떼이는 바람에 처음 사직교당에 나오게 되었단다. 때마침 조전권 종사의 천도재라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던 차에 남 눈치 보지 않고 실컷 울 수 있었다고.

가족교화 이렇게
젊어서부터 가족들을 교화 시키려 노력했지만 남편(장대진 교도)은 그녀의 뜻을 쉽게 따라주진 않았다. 80년대 말 직장 때문에 남편이 울산에서 따로 살게 되었을 때 나 교도는 ‘기회다’ 생각하고 일부러 주말마다 울산에 내려가 남편이 울산교당에 뿌리를 내리게 만들었다.
처음엔 교당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남편이 교당에 첫 발을 들이게 만들고, 일부러 교무님이 차려주신 점심공양을 먹으며 남편이 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그렇게 울산교당에 다니게 된 남편은 서울에 돌아와서는 바로 사직교당 교도회장을 7년 동안 하면서 법호도 받았다.
남편이 교도회장을 맡자 나 교도는 남편과 함께 참회문이며 금강경, 반야심경, 휴휴암좌선문 등을 아침저녁으로 외우고 좌선도 같이 하며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큰아들(장인용 교도)은 작년에 직장문제로 큰 갈등을 겪으면서 가장 힘들 때 스스로 동안양교당을 찾아가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첫 만남 자리에서 염주와 교전을 선물해 다소 부담스러워했던 며느리(노수영 교도)도 요새는 남편과 함께 훈련도 같이 나고 교당에 재미를 붙여 더욱 즐겁다.
결혼해서 미국에서 로스쿨에 재학중인 막내딸은 올해 5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LA교당에 다니는 막내딸(장영진 교도)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엄마의 기도로 나를 도와 달라”고 전화한다고.
나성훈 교도는 오늘도 손녀딸 (장희명)을 돌보느라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지만 손녀의 뽀뽀 한번으로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이 고단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죠.”
서원정 기자 swon@won.or.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