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환경회의 - 참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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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환경회의 - 참회문
  • 전재만
  • 승인 2001.05.26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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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파괴를 통해 대량생산을 이루었으며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부추기고,
대량소비는 대량폐기를 초래했습니다.
대량폐기는 대량오염을 일으키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 그리고 파괴와 오염의 고리 속에서
뭇생명은 소리도 못 지른 채 죽어갔지만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우리는
말 못하는 짐승과 식물들이 내지르는 침묵의 절규를 듣고도
짐짓 못 들은 척 외면해왔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살다 간 성자들이 한결같이
수평선 위로 무심히 흐르는 한 조각의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잎까지도 우리 모두가
생명이라는 하나의 근원에 이어져 서로서로 관계의 그물을 짜고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임을 말해주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타생명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들에 핀 하얀 민들레
계곡의 가재, 갯벌에 숨은 조개도
태어날 때 입고 나온 옷 한 벌이면 충분히 빛나는데…
우리는 장롱 가득 옷을 쌓아두고도
백화점 세일 때마다 새 옷을 사들이고
아직 쓸만한 물건이라도 신제품이 나오면 서슴없이 바꾸며
매일 매순간 썩지 않을 쓰레기를 쏟아냈지만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잠시동안 만들어낸 쓰레기더미는
수천 년 동안 지구상에 남아 우리의 삶과 만남을 기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지
기본적인 생존 욕구만 위해 자연을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위기상황은 도래하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는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자연의 은은한 빛깔과 소리,
자연의 담백한 맛을 잃어버렸고
숲 속의 신선한 공기를 잊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우리가
골프와 스키를 타며 운동을 즐기는 동안
토끼와 산새들은 자신들이 거처할 둥지와 굴을 잃었고
시멘트로 도로를 말끔히 포장하자
땅 밑에서 움트던 새싹들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시들어버리고
밀림 속에서는 죄 없는 동물들이
값비싼 모피를 찾는 사냥꾼의 추격에 쫓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 코 귀 입 그리고 촉감을 위해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만족해할 줄 모르고
五感의 노예가 되어 감각적 쾌락을 좇아
그 동안 너무 많은 생명을 희생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강물에 떠오른 물고기와 누렇게 말라죽은 나무들,
봄이 되어도 과수원을 찾지 않는 벌 나비,
이들이 사라지면서부터
우리 생명계를 잇고 있는 관계의 그물망이 줄줄이 풀려나가
이제는 나자신의 생존까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아름다운 생명의 집인 초록의 지구는
머지않아 전복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 오늘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생명의 존귀함을 모르고 함부로 저지른
모든 허물과 어리석음을 아파하며
사라져간 수많은 동식물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
뿌연 하늘과 붉은 빛 바다, 오염된 땅, 망가진 숲 앞에 꿇어 엎드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희의 큰 탓이옵니다!」외치며 가슴을 칩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을 내 몸같이 여기고
자연이 나의 가장 소중한 벗임을 깨달아
댐개발, 골프장 건설, 에너지의 과다소비 등으로 인해
죽어갈지도 모를 수많은 생명을 먼저 생각할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이 시대의 당면 과제인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해서도
뭇생명의 고통을 외면하는 개발위주의 정책에 과감하게 맞설 것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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