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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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약속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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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타원 이선조 교무"서전주 교당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면 전생의 약속이라는 것이 있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떤 필연적인 만남의 근원이 되는 그런 전생의 약속에서부터 만나서 수다 라도 떨어보자는 평범한 약속에 이르기까지. 들여다 보면 세상일은 수많은 약속에 의해 굴러간다. 어쩌면 약속은 세계를 엮어 가는 큰 고리일지 모른다. 약속을 잘 지켜 가면,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축적된다. 그 힘은 발전기의 힘처럼, 이 세상에 빛과 열을 만들어 낸다. 그 빛과 열에 의한 창조를 우리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볼 수도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신용의 힘을 축적하기 위해 약속을 이행하려는 노력을 한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뼈를 깎는 아픈 매질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수고와 희생이 따르기도 한다.
성현들은 깨달음으로 세계의 평화와 생령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위해 기도하시며 수행을 하신다.
인연, 또는 만남의 원리도 알고 보면 자신과 맺어진 약속을 확인하는 진리적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진리적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약속 이행의 원리에는 자발성과 합리성이 녹아있다. 진리적 작업의 약속 이행은 이해를 따지는 소인의 근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 이해를 떠난 절대의 심경에서 이루어지며, 어쩔 수 없는 타율이 아니라 아니하면 안 되는 무위이화의 순리적 발생에 근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합리적 공정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해 여름, ‘6.15 공동 선언이 발표되던 날, 남녘도 울고 북녘도 울었다....’라던 글귀를. 그것은 글이 아니었고, 남녘도 울고 북녘도 울었던 한반도와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7천만 겨레에게 지워진 분단의 한이 녹는 절규였다. 이제 그 6.15 선언 1주년이 다가왔다. 그 선언은, 55년 분단의 피 맺힌 한을 풀겠다던 약속이며, 온 겨레의 염원이 담긴, 그래서 반드시 이행해야할 생명의 약속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었던 시점이었기에, 차라리 진리적 만남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세계는 더 이상 막아서는 안 되는 분단의 현실을 뚫고, 그래서 한국의 온 겨레를 살리는 길이기에 그것은 차라리 무위이화의 법칙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6.15 공동선언은 우리 한 민족이 생각한 바를 약속하였기에, 이제 그 약속한 대로 생각해야할 바이다. 6.15선언이 우리민족이 생각한 대로의 약속이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약속한 대로 온 국민이 함께 생각하자. 6.15 선언이 일시적이며, 과거시제에 머무르는 사건이 되지 않도록 약속한 대로 생각하자. 한 번의 약속은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그 약속한 대로 우리의 생각을 지속시켜야하지 않겠는가? 한 때의 약속만으로도 또한 그 생각만으로도 6.15 선언의 생명을 살릴 수는 없다.
그 약속과 약속을 이어가는 삶을 통해서, 6.15 선언이 통일과 이 민족의 순연한 본성을 회복하는 아름다움으로까지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 의해서든 정치적 담보나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 민족 자존의 숨쉬기이다. 6.15 선언으로 이어진 한반도 생명의 숨결이 살아나도록 우리 모두 하나로 생각을 모아야 겠다 지금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약속하는가? 약속한 대로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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