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
상태바
세상의 빛과 소금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8.17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규현 신부


명동성당을 찾아 온 지하철 노동자들을 나가달라 했다구요. 성스러운 곳이라고, 기도하는 장소이고, 관리상 어려움도 많고, 소란스러우니! 나가달라 했다구요. 어디로요? 경찰서로요? 쇠창살 속으로요?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런 행위를 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명동성당까지 쫓겨 오게 되었는지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급히 문을 두들긴 그들을 차디차게 거절한, 보신주의에 찌들은 이 교회는 교회인가요? 예
수를 믿는 이들의 무리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찌 했을까요?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
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신 신비를 묵상하자며 바로 그 날에도 어김없이 미사 성제는 드려졌
을 터인데….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이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다
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마치 소 귀에 경읽기마냥 공허하기 짝이 없어요.
미소(微少)한 형제 한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곧 나에게 해 주는 것이라고 예수는 말씀하셨
지요. 억압과 가난 속에 놓인,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철철 넘쳐나
던 예수이셨지요. 그 분의 한량없는 인간애가,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그 분이
그를 따른다는 무리들에 의해, 사제들에 의해 굴절되어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사 지
내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성전이 더럽혀질까 두렵다는 이유로 예수께서 막무가내로 사랑
을 퍼붓고 계시는 사람들이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고 예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셨지요. 제도와 형식, 율법의 틀에 사람을
얽어 매려는 반인간적 거짓 권위, 거짓 복음 따위를 질타하신 겁니다. 그릇된 호교론을 거부
해야 함을 명백히 하신 겁니다.…
일제 때 뮈텔 주교는 그랬지요. 조선인이 학문을 배우면 교(敎) 믿는 일에 도움이 안 된다
고. 그래서 대학 설립이 전교(傳敎)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안중근의 제안을 거부했지요. 조
선인을 무지몽매함에 묶어 두고 맹목적 순종형 신자들만 양산해내자는 방침이었습니다. 전
제 군주적 발상이었습니다.
건강한 상식과 판단력이 마비된 신자들, 노예 근성으로 길들여진 신자들, 그리고 그같은 방
식으로만 통치하려 드는 사제들이 있는 한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절대 될 수 없습니
다. 뿐더러 세상이 안겨 주는 빛과 소금마저 소화를 못 시킬 것입니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
고 말 터, 다양한 의견이 출렁일 때 물길이 트이고 물이 정화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치의
교훈조차 우리는 매일처럼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국천주교회사』 글을 마무리하면서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