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에 받드는 그 때 그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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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에 받드는 그 때 그 법문
  • 한울안신문
  • 승인 2003.01.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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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을 모본(模本)하라 일원상을 모본(模本)하라


이날은 익산교당 대각전 내에서 제24회 하선 해제식을 거행하였다. 종사주 법좌에 오르시사 일반 선도(禪徒)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제군은 3개월 동안 입선하여 공부에만 전력하다가 오늘은 해제를 마치고 가게 되었으니, 과연 그 공부한 효과를 어떻게 나타내려 하는가? 실은 그동안 배운 것만 가지고도 실지생활에 연락을 붙여 사용할 줄 안다면 누구에게나 좋은 일 뿐이요, 낮은 일은 없을 것이니, 곧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될 것이요, 따라서 큰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실생활에 연락을 붙일 줄 모른다면 그동안 배워 안 것은 수포화하여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니, 어찌 허망치 아니하랴?
제군도 물론 각자 집에서보다는 고생되는 일이 많았겠지마는 이 곳에 있는 교무나 사무실 임원들도 여러 가지로 수고를 하였을 것은 사실이니, 즉 교무는 시간 시간 이 방면으로 말해주고 저 방면으로 가르쳐서 지자(智者)선인(善人)이 되도록 그 인도에 노력하였고, 또 사무실 여러 사람들은 선객의 식사 공급이며, 기타 심부름 등 주선과 보호에 진력(盡力)하였다. 그러면 그와 같이 여러 사람들을 수고롭게 하여가며 이 편은 편안히 공부를 하여 가지고 만일 어떠한 효과가 없다면 그는 반드시 배은자이요, 죄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내 이제 간단히 우리 공부법을 가지고 저 세상에 나가서 연락 사용하는 방법을 말하여 주리니, 그대로 실행하여 볼지어다.
제군은 그동안 심불일원상(心佛一圓相)즉 사은(四恩)의 내역을 배웠고, 따라서 신앙하고 숭배하였다. 그러면 오늘부터라도 집에 가거든 그 일원상(원형圓形)을 조그만하게 하나씩 만들어서 몸에다 지니든지, 벽에다 붙이든지 하고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간에 오직 일원(一圓)의 그 공(空)한 자리만을 생각하여 사심(邪心) 잡념을 떼어 버리라. 그런다면 곧 일원상을 체받는 것이 될 것이니, 비컨대 글씨 배우는 아이들이 선생의 쳇줄을 보고 그대로 쓰듯 그 일원의 원만 무애(無碍)한 모형을 본떠 보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무슨 일을 하다가 하기 싫은 사심(邪心)이 나는 것은 일원상을 위반하는 마음이니, 그런 때에는 즉석에서 그 사심을 물리치고 오직 온전한 마음으로 그 일에 전일한 것이 일원상을 체받는 것이요, 또는 불의의 재물이 욕심 난다든지 부당한 음식이 먹고 싶다든지 하거든 곧 그 욕심을 제해 버리고 오직 청렴한 그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일원상을 체받는 것이며, 혹은 가족을 대할 때에도 미운 데에 끌린다든지 사랑스러운 데에 끌려서 중도를 잃는다면 일원상하고는 어긋난 일이니, 오직 증애심을 놓아버리고 항상 원만 공정히 하는 것이 일원상을 체받았다고 할 것이다. 자고로 인물도 잘난 것을 보고 “원만하다” 하고, 일 처리도 잘된 것을 보고 “원만하다” 하나니, 원만(圓滿)이란 것은 곧 일원상을 이름이니라.
본회 공부의 요도(要道) 삼강령 중 정신수양 즉 일심을 얻는데 대해서도 항상 마음을 대조하여 보아서 사심없이 온전하여 무슨 일에든지 그르침이 없다면 곧 일원상을 체받는 것이요, 사리연구 즉 지식을 얻는데 대해서도 사리간에 배우고 익혀서 시비와 이해를 원만히 분석할 줄 안다면 또한 일원상을 체받는 것이며, 작업취사 즉 실행에 들어가서도 정의는 죽기로써 행하고 불의는 결코 행치 않았다면 이 또한 일원상을 체받은 것이니라. 그리고 순경이나 역경이나 그 어떠한 경계를 당하든지 원망심을 버리고 감사생활을 하며, 타력심을 버리고 자력생활을 하며, 모르는 것은 배우기에 노력하고, 아는 것은 가르치기에 노력하며, 남은 나에게 어떻게 하든지 나는 남에게 유익을 주며, 이외에도 사은사요(四恩四要)와 솔성요론(率性要論) 등 하여간 자리이타법을 쓸 것 같으면 일원상의 체를 받는 동시에 공부한 효과가 나타나서 한량없는 지자(智者) 복인이 될 것이요, 만약 그 반대로 삼십계문 등의 나쁜 일을 행한다면 일원상과는 위반되는 동시에 적악(積惡)이 되어 무궁한 죄고를 받게 될 것은 사실이다.
상술한 바를 더욱 간명히 말하자면 무슨 일이나 잘된 것은 정의요, 곧 일원상을 체받은 것이며, 그 반면에 잘못된 것은 다 불의요, 곧 일원상을 체받지 못한 것이니, 제군은 명심하여 억천만사(億千萬事)에 일원상을 모본할지어다.」하시더라.
이공주수필〔회보40호〕원기22년12월

마왕(魔王)을 쳐 항복 받으라
시창19년 4월19일 예회에 종사주 법좌에 출석하옵셨다가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제 여러 사람들의 거동을 본즉 어떤 사람은 정성껏 연사의 말을 듣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졸며 혹은 밖으로 나가며, 혹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을 하여 안정을 못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무엇이 들어서 그러하는지 아는가? 모른다면 내가 알기 쉽게 말하여 주리라.
다름이 아니라 즉 제군 각자의 몸에는 마왕(魔王)과 법왕(法王)이 있어서 항상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호령하나니, 육근은 곧 마왕과 법왕의 군사이라. 그래서 법왕과 마왕은 날마다 군권(軍權육근)을 서로 빼앗으려고 전쟁을 하는데, 공부가 익지 못한 사람은 대개 마왕이 똑똑하여 모든 권세를 잡고 있어서 무슨 일이든지 법왕을 이기고, 그 반면에 세력 빼앗긴 법왕은 아무 것도 간섭하지 못하고 한편 구석에 쫓기게 되나니, 그러할수록 마왕은 더욱 활기를 띠우고 기세 등등하여 육근을 제 마음대로 부려서 ‘술을 먹자’, ‘색(色)을 취하자’, ‘담배를 먹자’, ‘잡기를 하자’, ‘타인과(他人過)를 하자’는 등 온갖 수단으로써 타락의 길로 인도하고, 만약 법왕으로부터 ‘공부하자’는 제의가 있으면 어떠한 틈에든지 수면을 보내서 ‘잠이나 자자’고 하며 또는 서로 한 곳에 가서 한유잡담(閒遊雜談)이나 하자고 하여 어느 방면으로든지 불의한 삼십계문을 범하게 하고 인도 정의는 행치 못하게 하나니라. 그러나 법왕도 가끔 형세 만회를 꾀하며 기회를 따라 육근 이용하기를 도모하며, 더욱이 공부에 익은 사람은 법왕의 정신을 분발하여 날마다 마왕 토벌의 군략(軍略)을 연구하며 전쟁을 더욱 맹렬히 하나니, 오늘도 이 예회를 보자고 육근을 끌고 이 곳에 온 것은 법왕의 권력이요, 지질한 생각이 나고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은 마왕의 흉계니라.
그런즉 제군은 하루 속히 이 싸움을 잘 응변(應變)하여 불량한 마왕을 쳐서 평平하고 정당한 법왕의 세계가 되게 할지니, 과거 3천년전에 석가모니불이 쌍림보리수(雙林菩提樹)하에서 마왕 파순의 항복을 받으셨다 함도 곧 그 법왕(정의)이 그 마왕(불의)을 항복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현재 제군의 법왕을 본다면 아직도 마왕의 종노릇하는 자가 많으니, 어서 부지런히 마왕 항복 받는 공부를 하라. 이곳에서 전문공부를 시키고 또 예회를 보게 하는 것은 곧 마왕 항복 받는 병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요, 모든 교과서는 병서(兵書)요, 제군이 훈련을 받고 실행에 노력하는 것은 그 병법을 배워서 실전(實戰)을 하게 하는 것이니, 아무쪼록 명념(銘念)하고 분투하라.
공부인이 만일 법마상전부에만 올라간다 하여도 법왕의 세력이 많이 왕성하여져서 피차에 혹승혹패(或勝或敗)를 하다가, 법강항마부에만 올라간다면 불의의 주인인 마왕은 꼼짝도 못하고 법왕이 백전백승을 하나니라. 만약 마왕이 이런 말을 들으면 저의 세력이 손상될까 겁내어 어느 방면으로든지 정의(正義)의 공부를 방해할 터이니, 그 마왕의 계교에 빠지지 말고 전문 입선이나 매월 예회라도 성실히 참예하여 병법을 난숙(爛熟)히 알아가지고, 마왕은 보이는 대로 쳐 항복 받고 법왕이 승전의 기치를 들도록 할지어다.」하시더라.
서대원〔회보10호〕시창19년6,7월

집에서 살림하면서 공부하는 방식
이날은 익산교당 대각전에서 제23회(병자丙子) 동선(冬禪)해제식을 거행할새, 종사님 법좌에 출석하시사 일반 선도(禪徒)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제군은 삼동선(三冬禪)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부터서는 각각 집에 돌아가서 세간 생활을 하게 되었으므로 내 오늘은 특별히 집에서 살림하면서 공부하는 법(삼대력 얻는 방식)을 대강 말하여 주려 하나니, 명심불망하여 그대로 실행하여 보기를 바라노라.
즉, 우리의 생각은 항상 복잡 다단(多端)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전일하지 못하고 다른 삿된 데로 마음을 빼앗기는 때문에 그 일은 그르치기가 쉬웁나니, 보라! 가령 제군이 이 자리에서 이 말을 듣는 데에도 그 마음이 끌리는 데가 없이 오직 온전하여야 잘 들을 수가 있지, 만일 마음이 근심이나 걱정 등 시끄러운 일이 있어서 일심이 못 되었다면 아무리 유익하고 좋은 말을 한다 하더라도 무슨 말인지 요령도 잡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하등의 효과도 나타내지 못할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살림을 하는 데에든지 공부를 하는 데에든지 만일 주색이나 잡기 등 삿된 데에 그 정신이 흐른다면 그 일의 성공을 보지 못할 것은 또한 명약관화의 일이 아닌가?
대저, 보통사람이란 저의 마음이지마는 그 마음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여 필경은 그르치는 일이 허다하나니, 예를 들면 술이나 아편 같은 것을 먹으면 못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먹고 싶은 생각을 억제치 못하여 한번 두번 먹고 또 먹어서 결국은 가패신망(家敗身亡)하며 사회와 국가에도 그 해독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비단 술이나 아편뿐이리요, 본회에서 금지하는 살도음(殺盜淫) 탐진치 등의 삼십계문이 다 그와 같나니, 제군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모든 사심(邪心)을 떼어버리고, 오직 삼대력을 익히는 방식만 안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능히 할 수가 있나니, 과연 그 방식은 어떠한 것일까?
그는 별것이 아니니, 우리가 경전으로 배울 때나 말로 할 때에는 삼대력이라 혹은 삼강령이라 하여 어쩌면 수양 공부요, 어쩌면 연구 공부요, 어쩌면 취사 공부라고 구별을 하지마는 그 실은 삼대력이 한꺼번에 얻어지나니, 이제 몇 가지 예를 든다면 대개 아래와 같다.
즉 법설을 들으면서 삼대력을 익히는 법은 법설을 들을 때에 모든 잡념을 끊어버리고 오직 일심으로 듣는 것은 수양력을 익힌 것이요, 그 말을 들음에 따라 사리(事理)간에 모르던 것이 알아지고 의심나던 것이 확연히 깨쳐졌다면 연구력을 익힌 것이며, 밖에 나가고 싶어도 결단코 참고 꼭 앉아서 잘 들었다면 취사력을 익힌 것이다. 또 길을 가면서 삼대력 공부하는 법은 길을 갈 때에 아무 사심(邪心)도 없이 마음이 온전하여 돌뿌리에 채이거나 넘어지지도 아니하고 오직 일심으로 그 길을 갔다면 수양 공부를 잘한 것이요, 길 가다가 높고 낮은 데를 척척 분별할 줄 알며 가는 도중에도 견문간에 알아진 것이 있다면 연구 공부를 잘한 것이며, 어디를 물론하고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이상에는 아무리 가기가 싫던지 다른 연고가 있다 하더라도 기어이 그곳에 가는 것은 취사 공부를 잘한 것이다.
또 이외에도 삼대력 공부는 무엇을 하면서도 할 수가 있나니, 즉 마음이 좋은 데나 낮은 데에도 끌리지 아니하고, 하고 싶은 데나 하기 싫은 데에도 끌리지 않기를 공부 삼아 한다면 수양력을 얻는 길이요, 보든지 듣든지 생각을 하든지 하여튼 사리간에 알음알이가 생기도록 하는 것은 연구력을 얻는 길이며, 정당한 일과 부정당한 일을 구분해서 정당한 일은 기어이 행하고 부당한 일은 죽기로써 안 하기로 하는 것은 취사력을 얻는 길이니, 누구나 이 삼대력 공부만 잘 한다면 일방으로는 소관사(所關事)를 성취하게 되고 일방으로는 삼대력 얻는 공부를 잘 하게 되므로, 나는 이것을 일러 일거양득이라고 하노라.
그러나 과거 세상 유가(儒家)에서는 소위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세상사를 전혀 잊어버리고 평생에 글이나 읽고 들어앉아서 그의 처자 권속은 먹는지 굶는지 입는지 벗는지도 몰랐으며, 또 자기네는 선비니, 학자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의 가족에게는 사람으로 사람질 하는 데에 필요를 주는 『소학』한 권도 알기 쉬운 조선말로 번역하여 가르쳐 주는 사람이 희소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줄이요, 생활의 강령이 되는 사농공상의 직업도 도외시하였나니, 사실 그러한 인물들이 공부를 하였는들 그 무슨 효과를 이 세상에 널리 나타내었겠는가?
또 불가(佛家)의 승려로 말한다 하여도 부모?형제?처자와 모든 생활의 직업을 벗어나서 타력생활로 심산궁곡에서 독선기신(獨善其身)할 뿐이었으며, 소위 이름 높은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로서 모든 사회에 유익주는 점은 없고 다만 유의유식(遊衣遊食)할 뿐이었으니, 그 사회는 자연 그 본을 떠서 놀고 먹는 사람이 많게 되었고, 따라서 부지중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많은 해독이 미치게 되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과거의 편벽된 모든 법을 개혁하여 유무식 남녀노소를 망라하고 각자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공부할 수가 있는 이 삼강령법을 제정하였나니, 제군은 번거(煩遽)와 종용(從容)도 가리지 말며 세간 출세간의 처소도 관계 말고 오직 동정간에 삼대력만 준비하라. 그런다면 다방면으로 쓸모 많은 사람이 되어 어디를 가든지 귀대와 앙모를 받게 되리라.」하시더라.
이공주수필〔회보 34호〕원기22년4,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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