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 선진님과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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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 선진님과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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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8.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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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이재철>
1891∼1943 속명 재풍(載馮), 대봉도

비수와 어머니
일산은 대종사 명에 의해 《금강경》을 구해 온 적도 있지만, 또 법인 성사를 앞두고 대종사의 명에 따라 영광읍내에 가 단도 아홉 자루를 사러 가게 되었다. 이재풍은 스물 다섯 살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효심이 장하여 인근에 효자로 소문이 났다.
재풍은 단도 아홉 자루를 준비하고 신촌 사가에 가서 최후의 날을 대비하여 그 동안 벌여놓았던 집안 일을 하나하나 정리하였다. 병석에 있는 홀어머니께 차마 자결한단 말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오게 되었다. 어머니가 심상찮은 기미를 눈치채고 따라나오며 물었다.
“야야, 무슨 칼을 그리 많이 맞춰 가냐?”
“........”
“애야!”
재풍은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고 다만 이 말만하였다.
“앞으로 어머님을...... 모시 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니가 천하사를 한다는데 내가 어찌 말리것냐”
이재풍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차마 어머니를 두고 가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모질게 마음을 추어잡고 길룡리로 들어와 법인 성사에 참예할 준비를 하였다. 날이 새파랗게 서도록 칼을 갈고 또 갈았다. 칼을 갈다가 햇살에 칼날을 비춰 보다가 문득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재풍은 세상살이에 미련은 없었으나 다만 노쇠한 홀어머니 봉양할 사람이 없는게 마음에 걸렸다.
대종사 말하였다.
“걱정하지 마라. 모친 봉양은 내가 책임지마”
창생을 위해 최후 자결키로 한 기도 마지막 날. 대종사는 병중에 있는 재풍의 모친에게 약을 지어 사람을 보냈다. 재풍은 이후 다시는 서글픈 마음을 가지지 않고 기도에 임하였다.
이날(원기4년 양력 8월21일:음력으론 칠월스무엿새날). 법인성사를 통하여 재풍은 세속의 이름을 버리고 ‘실을 재(載), 밝을 철(喆) ‘재철’이라는 새 이름 공명(법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재철은 이듬해 ‘일산(一山)’이라는 법호를 받게 된다.
<이산 이순순>
1879∼1941 속명 인명(仁明), 대호법

대종사 대각 전의 이야기
호협하고 다정다감한 이산은 자주 길룡리와 법성포를 내왕하며 대종사의 외숙인 유성국과 절친하였다. 칠산 유건의 속명이 유성국이다. 그는 칠산의 생질 처화(대종사)를 조카처럼 알고 여로 모로 도움을 주었다.
대종사 부친 별세 뒤 읍내 부자의 빚 갚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채무를 청산하기 위해 한때 귀영바위에서 주막을 열어보았으나 그마저 뜻 같지 않아 ‘이 일을 어찌할꼬?”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당장 해결을 지어야 할 문제에 당해서도 대종사는 그냥 근심 걱정일 뿐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하였다. 귀영바위 집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볼썽 사납게 된 것을 보고 그가 나서서 개초해 주었다.
주막이 장사가 안 되는 줄 알고 읍내 부자의 빚 독촉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대종사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채무 상환을 해야 도를 이루지 이러고서는 도저히 안되겠구나”하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이산이 와 권하였다.
“그렇게 심화만 끓이고 앉았을 것이 아니라 새로 정신을 차려 어느 방면으로든지 활동을 하면 다시 살길이 생기는 것이니 장사라도 나서게”
이산은 친구 조카의 안된 모양을 보고 마음이 쓰였다.
“내가 이번에 탈이로 장사를 나갈 양으로 선편까지 말하여 놓았으니 이번에 같이 장사하러 가보지 않겠는가?”
이산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종사도 같이 가기로 결심하였다.
대종사 탈이 쪽으로 장사를 나설 결심을 하게 된 때는 칠산바다의 조기잡이 철이 한물간 유월이었다. 그러나 대종사는 이산의 주선으로 탈이파시에서 장사를 하여 상당한 돈을 벌어 영광읍내 부자에게 빚을 갚았다. 그로부터 더욱 공부에 몰두 병진년에 대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인연을 하여 이산은 친구 칠산의 인연으로 대종사의 제자가 되었다.

시월열흘날 입문
이산이 순순이라는 법명을 받게 된 데는 그 내력이 있다. 이산은 천정리 천기동 사람으로 절친한 친구 유건의 인도로 대종사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그 날이 시월 열흘날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열흘 순 ‘(旬旬)’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런데 왜 ‘열흘 또 열흘’이라고 두 번이나 거듭하였을까. 이인명은 호협하고 놀기를 좋아하여 열흘마다 예회에 늦게 오는 일이 있었다. 대종사는 그에게 열흘마다 열리는 예회에 정성을 다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로부터 그는 스승님 말씀에 명념하여 구호동으로 이사하여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랐다. 생전 일도 않던 사람이 방언조합 때 일을 다하고 산판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였다. 방언공사, 산상 기도를 마치고 대종사 변산에 입선하자 이산은 고향에서 삼산을 도와 동네 풍속 개선, 허례폐지운동 등 미풍 양속을 진작시키는 등 천정조합에 동참하였다.

<삼산 김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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