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행복-봉사인생 40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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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행복-봉사인생 40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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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3.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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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수 교무 (강남교당)
나의 삶 나의 행복-봉사인생 40년(18) " 박청수 교무 (강남교당)
인간에겐 견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보곤 한다. 나의 경우 순례자의 걸음으로 지구촌 53개국에 발길이 미쳤다. 여행을 할 때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고 깨닫게 된다. 특히 중동지역을 여행할 때는 그 현장에서가 아니면 체득할 수 없는 것들을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지방 도시였다는 요르단의 제라시에서는 지진의 괴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전신으로 느낄 수 있었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고 1∼2세기경에는 서구문명의 요람이었다는 제라시에서는 천 몇백년 전에 지진이 요동 치고 지나간 자리에서도 역사적인 그러한 사실들을 엿볼 수 있었다.
방금 지붕을 걷어낸 상태처럼 보이는 모자이크 마룻바닥과 수천 명이 모일 수 있는 원형극장, 석주의 둥근 품 안에 안겨 있는 제라시 광장, 800m의 ‘기둥의 거리’에는 키가 큰 돌기둥들이 근육이 삭아버린 앙상한 속뼈를 드러내 보이며 도열하듯 서 있었다. 한번의 지진으로 그 방대한 규모의 석조건물들이 매몰돼 버렸다고 한다. 지진이 나면 지반이 흔들리고 땅바닥이 갈라져서 집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땅속의 무서운 괴력이 큰 입을 벌리고 지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또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다치고 정신적으로는 그 무서운 지진의 공포 때문에 평생 동안 얼마나 시달렸을까? 가족과 삶터를 모두 잃어버린 그 상실감은 또 얼마나 컸을까?
중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로는 어디에선가 지진이 나기만 하면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그 재난지역을 돕고 있다. 지진뿐 아니라 긴급구호가 필요한 화산폭발이나 태풍 피해를 입어도 즉각적으로 관심과 정성을 쏟은 나라가 13개국에 이른다. 그것은 중동의 제라시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2년 전 3월 아프가니스탄에 강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한 일간 신문에 실린 ‘나린지역 90% 파괴, 서 있는 집 안 보여―2만 명 실종’이란 기사에서는 “산간지역의 평원인 나린은 지형과 도로사정으로 구조와 지원활동을 항공기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곳이어서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흙벽돌 집들로 이루어진 가난한 농업 공동체인 나린은 눈 덮인 힌두쿠시산맥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카불에서 이어지는 길은 좁고 꼬불꼬불하고 옆은 깎아지른 절벽인데다 눈마저 내려 교통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다. 게다가 길 중간에 있는 3.2km 길이의 실랑터널은 해발 약 4km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터널이다 …”라고 현장 소식을 전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가 본 적은 없어도, 눈에 선한 고향마을 소식 같아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 까닭은 내가 10년 이상 오르내리고 있는 북인도 라다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 아프가니스탄이고, TV 화면으로 보면 높은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그들 모습도 내가 자주 보던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형태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내가 돕는 라다크와 이웃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이웃이 큰 불행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고통은 나로 하여금 더 이상 구경꾼처럼 방관자로 있을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듯 그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여 10,145,130원의 성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탁했다. 성금이 많은 것은 아니어도 세계의 불행에 동참하는 내 몫을 한 것이다.
이제는 방안에 앉아서도 세계 소식을 TV로 낱낱이 볼 수 있다. 2001년 인도의 구자라트 주에서 3만명의 목숨을 잃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TV로 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여러 개의 반지를 낀 한 여인의 손이 무너진 건물더미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그 여인이 행여 숨쉴 수 있는 공간 속에 갇혀 있길 기도했다.
그러면서 상상 속에서 그 손을 뽑아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내 손이 건물 잔해더미에 깔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인도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성금을 모았고, 그 성금을 기탁하고서야 내 손이 흙더미 속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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