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타원 황정신행 조사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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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타원 황정신행 조사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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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7.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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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들의 어머니, 거진출진 대사표
회상 창립 당시 소태산 대종사를 도와 교단 곳곳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팔타원 황정신행(호적명 온순) 종사가 6월29일 오후 12시20분 105세를 일기로 서울 위생병원에서 거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에따라 황 종사의 교단에 끼친 업적을 기려 원불교 교단장으로 서울회관에 발인장소를 마련하고, 7월2일 오전 8시에 발인식을 엄숙히 거행했다. 법랍 68년,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6호, 원성적 정특등.
초기 교단 시절, 막대한 정재를 희사해 교단의 수달장자라 일컬어졌던 황정신행 종사는 원기23년 34세 되던 해에 돈암동 서울교당에서 대종사를 친견 후 “종교는 모든 사람을 올바르고 진실되게 개조시키는 공장”이라는 말씀을 받들고 이 공부 이 사업에 전력하게 되었다.
이후 중앙총부와 서울교당의 유지발전은 물론 창업기의 갖가지 경제난을 극복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 원기34년에 원불교 최초의 재가 정수위단원으로 피선되었고, 원기42년 교단 최초의 대호법 1호가 되었다.
이런 황 종사의 행적은 ‘무념보시’에 대해 소태산 대종사에게 질문한 내용이 교단품 35장에 수록되어 있으며, 또 선외록 교화기연장 7절에서는 대종사로부터 무의무탁한 노유를 보호하는 기관을 설립해 이 법을 실행한 사람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이와같이 황 종사의 행적은 사회구제사업에 큰 족적을 남겼다. ‘전쟁고아들의 어머니’라고 불리기도 한 그는 1945년 8·15광복이 되자 서울 한남동에서 보화원 간판을 걸고 전쟁고아들을 수용해 보살피는 한편 해외에서 귀환하는 동포들을 위해 구호소를 마련, 구호품을 전달하는 등 사회봉사 사업에 깊은 열정을 보였다. 또 1951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권유로 한국보육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들을 보살폈으며, 1970년에는 휘경학원을 설립해 휘경여·중고를 통해 여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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