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교단과 사회를 이어주는 소통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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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교단과 사회를 이어주는 소통의 장소"
  • 한울안신문
  • 승인 2005.10.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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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오 활동에 여념없는 이선종 특별교구장


“훗날, 후배들의 뇌리 속에 ‘열정과 신념이 가득찬 선진’으로 남고 싶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천리 길도 멀다 않고 달려가 자리를 꼿꼿이 지켜 주는 사람, 검정 치마 흰 저고리를 입고 자리만 지켜도 절로 빛나는 사람, 요즘 시민·사회단체는 그가 없는 자리를 상상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선종 특별교구장의 하루는 눈 코 뜰 새가 없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난 원불교 홍보대사

10월24일 복잡한 서울거리에도 어느새 가을낙엽이 하나둘 쓰러지는 오후, 이선종 교무가 머물고 있는 종로구 원서동 특별교구청을 찾았다. 한옥의 멋을 제대로 내기위해 시멘트벽을 헐고 기와를 걷어낸 흙바람 날리는 현장에서 이 특별교구장은 이런저런 지시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잠시, 입술이 부르튼 모습으로 흙먼지 사이를 빠져 나온 그는 대뜸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불평불만과 무력감에 너무 빠져 있어. 어려운 문제는 피해가려하고, 잘못은 상대방에게만 돌린다 말이야. 이렇게 해서 어떻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겠어”라며, 그 특유의 열정어린 목소리를 쏟아낸다. 그가 요즘 관계하는 일은 참여연대 공동대표, 우토로 살리기, 천지보은회, 세계생명포럼, 생명탁발순례, 민주화기념사업회, 인혁당 사건 등등 손가락으로 꼽아도 한참을 꼽는다. 또 여기에 30여개 사회·시민단체와의 연대활동, DMZ에서의 평화선언, 세계 환경장관 회의 초청 등으로 하루에도 보통 2~3개의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 내지만 전혀 피곤한 기색은 없다.
“이 모든 것이 어디 이선종 개인의 힘이겠는가. 난 단지 ‘원불교 홍보대사’의 임무를 띠고 자리에 나갈 뿐이다. 내가 빠지면 곧 원불교가 빠지는 것이란 생각을 하니 결코 어디에도 빠질 수가 없다”며 숨을 돌린 그는 “최근 광복60돌 기념으로 북한을 방문해서도 이런 전력 때문에 그곳 최고위층과 만나 당당하게 원불교 통일관을 설명할 수 있었다”며 자랑스러워 하기도. 또 그는 “이제 우리 사회의 화두는 ‘생명과 평화’다. 여기에 관심 두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지금 이웃종교들이 영화를 누리는 것은 옛날에 정신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한 후, “우리도 초기교단에서는 전재동포구호사업 등 사회문제에 앞서왔지만, 지금은 사회문제에 너무 외면하고 무관심하다. 그래서 사회와 벽이 생기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할 말은 해야지

이어 “우리가 대종사님의 법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눈치와 기회를 너무 보는 것 같다”고 질책하면서 “들어야 할 소리는 듣고, 해야 할 말은 할 줄 알아야 교단의 미래가 있다. 종교본질의 역할에 젊은 후배들이 눈을 떴으면 좋겠다”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들려주는 이야기 한 토막. “영국의 어느 지역을 갔을 때다. 자연의 습지와 인공의 습지를 절반씩 나눈 이곳에서는 수많은 새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자연의 습지에는 시베리아나 먼 바다에서 날아온 새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으며 날고 있었지만, 인공의 습지에서 인간이 주는 먹이로 살고 있는 새들은 날지를 못하더라. 난 이걸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모든 잘못을 조직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건 비겁한 것이다. 교단의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찾아야 한다. 스스로가 희망의 메시지가 될 때, 교단도 희망이 있다.” 그 이야기마저도 가슴이 아픈 듯 천장을 응시하던 그는 잠시 틈을 둔 후, 그의 꿈을 가득 담은 ‘원서동 시대’ 이야기를 이어갔다.

후배들의 지팡이 될 것

그는 그동안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인맥을 토대로 “한옥과 소나
무가 어우러진 이곳을 우리 전통이 꿈틀되는 정신문화의 산실로, 그리고 엔지오(NGO)의 요람이 되도록 가꾸어 갈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이 여기서 세계를 호흡하도록 하겠다. 이곳은 교단과 사회를 이어주는 소통의 장소, 가교가 될 것이다”며 환한 미소를 지은 후, “내가 이곳에서 후배들이 나아갈 지팡이가 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라며 낮은 독백처럼 말을 삼켰다. 또 “문화계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하고선 얼마나 좋아하는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며 “그것을 모두 충족시키려 하니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아 걱정”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니 어느새 가을 햇살이 창가를 비켜 지나간다. “이젠 내 인생도 계절로 치면 가을인가 봐. 어느새 불평도 사라지고, 시간이 그저 아깝게 느껴지니 말이야”하고 자신의 속으로 들어간 그는 “나도 이젠 가을국화 향기처럼 살고 싶어”라며 말을 맺었다.

노태형 편집장 ist21@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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