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를 만난 사람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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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를 만난 사람들3-2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7.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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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출가 똑같이 천여래 만보살 대열에 오를 것"
(지난호에 이어)
학교공부 못한 한을 도학공부로 돌려 부처님의 참 제자가 되리라는 결심을 하고 대종사님께 전무출신의 서원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네가 불법연구회의 문을 닫게 하려 드느냐”고 크게 꾸짖으시며 타이르시기를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고 재가교도가 없으면 출가자가 누구를 제도하며 중생제도에도 재가공부인들이 있어 주인이 되어야 출가가 발을 붙이고 중생제도를 한다”하시며 “이왕 결혼한 몸이니 출가를 하여 불법연구회에 누를 끼치기 보다는 재가에서 출가의 뒷받침을 하라”하시고 부설거사의 법문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우리 교단은 재가출가를 똑같이 공부와 사업의 평가를 하여 천여래 만보살의 대열에 오르게 할 것”이라 하시었다.
나는 세속에 들면 공부심과 신심이 약해질까 걱정이 되어 대종사님께 은녀결의를 허락해 주실 것을 청원하였다. 대종사님께서는 “은부녀결의를 맺어준 제자가 여럿 있으나 이 또한 누구는 은부녀결의를 하고 누구는 안하느냐는 말이 있어 폐단이 되겠기에 끊었는데 끝으로 너 하나만 받겠으니 네가 막내다"하시며 허락하시어 부녀결의 서원서를 바치게 되었다.
나는 이듬해(원기 22년 정축년)에도 동선에 참여하여 두번의 동선을 나면서 신심에 뿌리가 내렸다고 생각된다. 이 해에는 어머니의 회갑을 맞는 해로서 어머니께서는 회갑잔치를 마다하시고 대신 수양원을 지어 달라고 소원하시어 두 오라버니(영산 박영식과 상산 박장식)께서는 향교에 조그만 집을 지어드리니 이것이 남원교당의 시초가 되었고 상산 박장식 종사님을 비롯하여 곤타원 박제권, 진타원 박제현, 혜타원 오희원 등 수 많은 박씨 문중에 전무출신이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다고 하겠다.
나 또한 시댁으로 돌아와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생활속에 실천하면서 박사시화 할머니를 오시도록 하여 시어머니께 전하도록 하니, 시어머니께서는(예타원 김성덕) 밝으신 혜명으로 대도정법을 알아보시고 입교하시어 이 후 자녀분들을 모두 일원가족이 되도록 지도하셨다.
누군가가 박사시화 할머니께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입교하라 하신다”며 “많은 사람 입교시키기 보다는 교도노릇 할 만한 사람을 입교시키라”고 말하니, 박사시화 할머니 대답인즉 “닭이 천 마리면 그 중에 봉황이 한 마리 있다”고 하셨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어머니께서 바친 열성과 정성으로 박씨 문중에서 전무출신이 계속 나오고, 시어머니를 연원달아 창평교당이 세워지고 슬하의 이미 작고한 능산(고정진)을 비롯해서 보산(고문국), 감산(고문기) 등 자제분들이 재가교도로써 중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 박사시화 할머니 말씀에 대한 산증인이요 표본이라 하겠다. 나는 그 공덕이 무량하시리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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