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서 '강자 약자 진화 요법' 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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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서 '강자 약자 진화 요법' 설하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6.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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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과와 그 제자들 7


김영신 선진



송도성 선진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11년 음12월초에 상경하자 음12월9일(원기12년 양1월12일) 경성회원들이 창신동 출장소에 모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때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과 고락에 대한 법문을 설하시었다.

성주법문
이 자리에서 이공주는 『불법을 공부하려면 수양의 힘을 얻어야겠는데 수양은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좌선을 하고 저녁 자기 전에는 염불을 많이 하시오』
『염불도 어떤 염불을 하면 되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염(念)하시오.』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염하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에 이공주는 다시『젊은 사람이 어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겠습니까?』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종사는『그럼 시구(詩句)는 읽을 수 있겠소?』하고 시구 하나를 지어서 불러주었다. 『거래각도 무궁화 보보일체 대성경 (去來覺道 無窮花 步步一切 大聖經) 이라』
옆에 있던 성성원이 『저도 하나 지어 주십시오』하고 말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다시 한 시구를 지어 주었다.
『영생영지 영보장생 만세멸도 상독로 (永天永地 永保長生 萬世滅度 常獨露)』
훗날 이날의 시구를 합하여 영혼천도를 위한 성주(聖呪)가 되었다.
김영신은 자신의 얼굴 상처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라 마음에 상처 있는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앞으로 일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원기12년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 상경하여 김영신에게 『본관에 사무보는 사람이 귀하니까 네가 부기를 배워라. 너만 알 것이 아니라 남도 가르치고 본관에 사무를 보면 너의 원이 달성될 수 있는 길을 터 주마』했다.
경성교무 송도성은 자신을 <불법연구회 규약>발행인으로 하여 인쇄한 후 원기12년 봄 인사에 10개월 만에 익산본관 연구부 서기로 가고, 송도성 교무의 형인 송규 교무가 경성 제2대 교무로 부임하였다.

강자 약자진화 법문
원기12년 4월27일(음3월26일) 제5회 평의회에서 회중재산을 소태산 대종사 앞으로 하자는 대중 의견에 대종사는『자신 1인으로 하는 것보다 가장 믿을만한 회원 1인을 연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하며 송도성을 추천하여 소태산 대종사와 송도성의 명의로 회중재산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경성 창신동 605번지 경성출장소를 이동진화가 희사한지 1여년 만인 원기12년 6월20일(음5월11일)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 344-2번지 송도열(송도성의 속명)앞으로 이전 등기한다.
원기12년 익산본관에서는 영광에 신흥출장소를 설치하고, 산업부와 육영부 창립단을 조직하였으며 유공인 우대법 등이 제정되어 조직이 정비되어 갔다.
경성출장소도 송규 교무의 지도로 10여명의 회원들이 예회를 보고 소태산 대종사가 상경하면 법문 받드는 재미로 신앙과 수행이 날로 깊어갔다.
익산본관에서는 원기12년 음 3월26일 그 동안 동·하선기 마다 여자 선객들의 거처할 만한 숙소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어오자 제2회 정기훈련(을축동선) 지도교무였던 이춘풍이 ‘부인선원’건립을 특청하여 건립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양잠실을 건축하기 위하여 모았던 기금으로 대강당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제1회 총회를 앞두고 대강당(임시강당) 건축공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소태산 대종사 상경하였다. 상경하여 경성 출장소에 계시다가 원기13년 4월16일(윤2월26일) 오전 10시경에 송규 교무를 데리고 계동 이공주 집으로 갔다.
민자연화, 이성각, 이공주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하여 모시고 실내로 들어갔다. 경성회원 이동진화, 성성원, 이철옥, 이현공 등이 모여 소태산 대종사의 여러 가지 법설을 받들었다.
이때 한 여러 가지 법설중 이공주가 기록하였다가 <월말통신(月末通信)> 제1호에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란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법문의 내용은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 후 최초 법어를 설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법문 중 강자와 약자의 진화상 요법을 ‘약자로 강자 되는 법문’이라 하여 예화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법문은 갑동네(약자)와 을동네(강자)를 설정하고 지배자(일제)와 피지배자(조선)를 비유하여, 영원히 강자되는 갑동네의 대응법을 제시한 것이다 곧 약소국 조선이 강국 일제와 대응하는 방법을 예화를 통해 은연중 제자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이는 비록 국가 단위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단체에도 적용되는 강자로의 진화요법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김영신에게 『본관으로 가서 결산을 거들어라』하시며 전무출신하러 갈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소태산 대종사 먼저 익산본관으로 가시었다. 김영신은 음 3월에 경성교무 송규를 따라 익산 본관으로 내려갔다.
익산 본관에는 김영신보다 한 살 아래인 조전권이 4개월 먼저 와 있었다. 조전권은 아버지 조송광 장로가 익산본관에 가서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를 찾아 회개시키기 위하여 익산본관에 왔다가 소태산 대종사를 뵙고 제자가 되어 제6회 정기훈련(정묘동선 원기12년 음6일~원기13년 음2월6일)을 이수하고 농공부 일을 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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