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와 그 제자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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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와 그 제자들 14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9.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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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은자녀들


소태산 대종사 원기15년 10월3일(음8월12일) 익산본관을 출발하여 신흥출장소를 거쳐 영광(영산)에서 11월26일(음10월7일)까지 영광회원들의 공부를 북돋으며 점검하고 이튿날 본관으로 귀관하였다. 본관에서 밀린 사무를 마친 후 음10월17일 저녁열차를 타고 상경하여 계동 이공주 교무집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경성출장소로 갔다.

은부시녀 결의
성성원이 경성출장소로 소태산 대종사를 찾아와 어머니 박공명선의 유언을 전했다.
『내가 일찍부터 종사주전에 너를 시녀로 바쳐 믿고 의지하려고 하였더니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죽으니 내가 죽어도 또한 한이 있다』라는 박공명선의 유언을 들은 소태산 대종사는 박공명선의 신성을 가상히 생각하고 또 성성원의 애정(哀情)에 느낀바 있어 은부시녀의 결의를 허락하였다.
지난해 발표한 은부시자녀법에는 남녀계통에 한하여 남자는 은부는 정할 수 있으나 은모는 정할 수 없고, 여자는 은모는 정할 수 있으나 은부는 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성출장소에서 원기15년 12월15일(음10월26일) 소태산 대종사와 여자회원간에 처음으로 은부시녀 결의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음10월26일은 경성출장소 예회일이다. 예회에서 소태산 대종사 ‘도덕’이란 주제로 설법하고 성성원의 대중공양이 있었다. 이 공양은 오후에 소태산 대종사와 은부시녀결의식을 하는 기념으로 공양을 한 것이다.
오후 3시경에 일동이 좌정한 후 결의식을 행하려 할 때 이공주 교무가 소태산 대종사께 말했다.
『공주가 영신을 시녀로 정한 본의는 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은모의 안일과 명예를 구함이 아니오라 오직 영신이 전무출신을 하여 공사에 헌신하려하나 무산하여 공부를 할 수 없음으로 영신을 공부시킴은 본회 사업을 하는 것이므로 소위 은모시녀가 되었고, 또 전권도 공주에게 뜻이 없지 않다 하여 또 결의식이라도 할까 하여 하였었더니, 이제 오늘날 종사주께옵서 성원을 시녀로 정하시니 이러한 법이 있을진대 영신과 전권을 종사주전에 시녀로 바치옵고 공주는 힘 미치는데 까지 이전과 다름없이 원조하여 주겠습니다. 그러면 공주는 개인의 시녀를 둔 것이 아니라 일보를 나아가 사요 중 하나인 타자녀 교육을 하는 세음(細音)이 되오며 영신, 전권으로 말하오면 종사주를 아버님으로 모시게 되오니 또한 공주를 은모로 하는 것보다 전진상(前進上)얼마나 유익이 있을 줄 압니다.』

성성원·김영신·조전권
소태산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너의 말이 좋다. 그러나 영신은 기왕에 너와 결의식을 하였는데 나의 딸을 삼으라하니 너의 딸도 되고 나의 딸도 되란 말이냐? 만일 전에 결의서를 취소시킨다면 그리하여도 좋으나 만약 그대로 둔다면 못한다.』
이공주가 즉석에서 결의서를 취소하기로 영신, 전권에게 의견을 물으니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소원이라 하여 일시에 신 삼형제가 되었다. 성원, 영신, 전권은 소태산 대종사께 사배를 드려 부녀의 예를 드린 다음 신 형제간에 예를 마친 후 세 사람에게 최초법어를 낭독하고 소태산 대종사의 훈시를 끝으로 결의식을 마치었다.
성성원은 소태산 대종사 첫 상경때 계동 자신의 집에서 3일간 머무를 때 어머니와 이모(박공명성, 박사시화)는 귀의하였으나 20세의 갓 결혼한 새색시의 몸으로 당시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으나 이듬해 최도화의 연원으로 입교하였다가 원기 10년 말 소태산 대종사 상경하여 이공주의 30회 생일을 축하해 주고 계동 이공주가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 음1월5일날 이공주가로 찾아가 성원이라는 법명을 받았었다. 이때 받은 소태산 대종사 친필 법명증이 원불교 역사박물관 봉래제법실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전해지는 법명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전음광·김대거와 은부결의
소태산 대종사는 어찌된 일인지 성성원의 법명증에 익산 본관을 건설한 후임에도 소태산 대종사 자신의 주소를 전북 부안군 산내면 석두암이라 하고 자신을 석두거사라고 한 점이다.
이 후 남녀 구분 없이 은부은모와 은자은녀결의는 소태산 대종사에 한할 뿐 이외에는 허용치 않는다는 새로운 개정법이 공고되었다.
?익산본관에서 원기16년 2월14일(원기15년 음12월27일) 소태산 대종사와 전음광, 김대거가 은부시자 결의식을, 정라선이 은부시녀 결의식을 가졌다.
원기15년 불경기로 익산본관의 유지대책에 큰 타격을 입는 어려움과 교서편찬 등 사무관계로 인하여 교화 기관지인 <월말통신>이 원기15년 말 제34호를 내고 부득이 원기16년부터 중단되어 원기17년 4월 <월보>로 복간될 때까지의 시기는 익산 본관이나 각 지방의 소식이 사업보고서에 조금씩 전해질뿐 상세히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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