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와 그 제자들-서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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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와 그 제자들-서문성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10.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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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기지로는 하늘이 주신 것이다.


이공주는 원기15년부터 경성출장소 교무로 업무수행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전무출신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재가에 머물지 않고 전무출신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이르자 소태산 대종사에게 익산본관으로 갈 뜻을 말씀드렸다.
경성출장소는 회원이 점차 늘어나 원기15년 음8월부터 예회에 출석회원이 20명을 넘자 예회 보는 법당(방)이 비좁아 많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상주하는 사람도 4~5명에 이르러 새로운 장소에 회관을 물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성출장소 돈암동 새 터 매입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경성상황을 생각하고 이공주의 익산 본관으로 출가할 뜻을 조금 뒤로 미루라고 하였다.“경성출장소는 집도 협착하고 유지형편도 어려우니 공주가 여기에서 집이라도 하나 마련해 놓고 유지 대책을 세워 놓은 뒤에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성회원들이 창신동 출장소가 비좁아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원기17년에 마침 경성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창신동 출장소 뒤 낙산 너머에 600여평의 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답사하였다.
그 후 소태산 대종사가 상경하자(원기17년 음4월 이전으로 추정) 이공주는 경성요인들과 함께 소태산 대종사를 모시고 산을 넘어 미리 답사한 돈암동 땅을 안내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 터를 둘러보고“수도원 기지로는 하늘이 주신 곳이다”며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새로운 경성 출장소 신축기지가 확정되었다.
이공주는 자신의 사가인 계동집(계동15-3)을 처분하여 과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에서 경성부에 편입된 돈암동 509번지 14평과 510번지 571평 총 585평 장희수씨 소유를 1,400여원에 매입하였다. 이곳은 행정구역이 서울 성북구 돈암동으로 편입되었다가 현재 성북구 삼선동 1가 288-1번지는 삼선공원으로, 288-2번지는 학교법인 한성학원으로 편입되었다.
이공주는 기지를 매입하고 경성생활을 청산한 후 익산 총부로 출가의 길을 떠났다. 이공주가 익산 총부로 떠나자 교무가 없는 상태가 되어 소태산 대종사는 9월1일(음8월1일)에 이동진화와 함께 상경하여 9월16일(음8월16일) 예회에 참석하였다. 오전 예회에 소태산 대종사 설법이 있었고 오후 단회에서 경성회원들은 스스로 경성출장소에 관한 몇 가지 제반공사가 이루어졌다.
예회에 점심 식사하는 것은 여름에는 먹기로 하고 겨울에는 먹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 회관건축에 대하여는 원기18년 봄에 건축하기로 하였으며, 세 번째, 다년간 활동한 회원들이 열반에 들고 생활이 허락지 못해 유지비를 못내는 회원들이 있어 부족한 유지비를 지환선, 이현국 모녀가 부족액을 부담하기로 하여 해결되었다. 네 번째, 안건인 교무초빙에 대하여는 당분간 이동진화가 선출되어 주관하기로 하고 내년 봄에 정식 교무를 모시기로 하였다.
정식 교무가 부임하기까지 경성예회는 대리교무 이동진화와 서기 김영신, 이철옥 등이 주관하고 김삼매화, 이성각 등의 지극한 노력으로 흔들림 없이 공부하며 예회가 진행되었다.

경성회원들의 공부생활
그 당시 예회록을 통하여 경성회원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생활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원기 17년 9월6일(양10월5일)
오전10시 이철옥씨 죽비 하에 개회하고 김영신 출석원을 점검하니 15인 이러라.
정예(定例)에 의하여 일동 심고가 있은 후 김영신씨의 법어봉독이 있었다. 그 다음은 이동진화의 주제 하에 경의문답키로 되었는데 그 보다도 먼저 말씀하고자 함은 우리가 매월 3,6일이면 공부를 한다, 예회를 본다고 하나, 그 날 와서 보면 항상 하는 사람들만 말도 하고 읽기도 하지 각자의 공부는 늘어가는 것도 없고 특별히 알아지는 것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3.6일을 진행하는 가운데 자미(滋味)도 나며 6일을 굴지고득(屈指苦得)케 하며 알아지도록 할까! 그러자면 그 방법을 어떻게 하여야만 좋겠습니까 하는 문제를 제출하니 일동은 다 각각 의견을 발표한바 이성각씨는 우리가 연습하는 것은 교과서 3권인데, 처음 규약서 1권만 가지고 독서 할 때는 전권을 통강까지 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점차 노둔(魯鈍)한 정신에 사무는 복잡한 사람이 3권을 다 읽으려하면 이 책도 저 책도 다 모르고 그저 마음만 바쁘고 오히려 먼저 통강한 규약까지 잃어버릴 지경이오니 본인의 우견(愚見)으로는 이 3권을 고루 연습키 위하여 반 7일로 익월 초 6일 까지 즉 10일간은 사가에서 규약서를 가지고 복습 혹은 자습을 하다가 초 6일에 와서 규약서를 가지고 문답 혹은 통강케 하고, 또 17일부터는 육대요령을 가지고 상(上)과 여(如)히 한다면 3종 교과서가 고루 훈련이 되겠다는 의견을 말하니 김삼매화 성성원 양씨의 사가에서도 방심할 것이 아니라 공부자라는 관념을 망각치 않은 주의까지 되겠다 하며 일반이 서로 즐겨 하였다.
교무 말이 그럼 이러한 좋은 말이 있은 즉 금일부터라도 그것을 실행하려면 규약서를 합시다 하고 장시간 문답을 하다가 김영신씨 선서문 낭독을 하고 폐회하니 시(時)는 오후 1시 이더라. 오후 2시경에 속회하여 각종 법문 기재한 것을 낭독 설명 후 4시경에 산회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자주 상경하여 경성출장소 예회를 보시는 한편 머리 습종을 치료 하였으나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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