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와 그 제자들-서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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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서울교화와 그 제자들-서문성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12.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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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지금 어변성룡 中
원기20년 음3월26일 대각전에서 개최된 제7회 정기 총대회에서 신흥, 전주, 진안, 원평, 하단, 남부민 등 각지출장소가 지부로 승격될 때 경성출장소도 지부로 승격된 것으로 보여진다. 지부로 승격된 곳에는 지부장이 임명되었다. 경성지부장에 박형균이 임명되었고 서기에 서대인, 행상 및 재가순교로 권홍제화, 김승운, 이정원, 이출진화, 최중제화가 임명되었다. 경성지부는 원기11년 창신동에 출장소가 생긴 후 원기18년 돈암리에 신축회관을 완공하고 2년여 만에 정식지부로 승격이 된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 원기20년 7월16일(음6월16일) 박창기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1개월반 정도를 경성에 있으면서 경성예회에서 『조선불교 혁신론』, 『사은』, 『고의 해탈』 등의 법문으로 회원들의 시들었던 초목에 단비를 주듯 하였다. 이때 경성지부 감원인 김삼매화는 경성역 앞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1개월 동안 치료를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와 회원들이 병문안을 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간호해 회복되었다. 2차 금강산 여행 준비 중단 소태산 대종사는 경성에서 원기 15년에 이어 다시 한번 금강산 여행을 준비 하였다. 이때 익산 총부에서는 부산하단지부 김기천 교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서정원장 이재철을 파견하였다. 김기천 교무의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한 소태산 대종사는 8월31일(음8월3일)금강산 여행 준비를 중단하고 익산 총부로 귀관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가 제2차 금강산 여행을 하려고 하였던 목적은 무엇이며 누구와 함께 여행하기 위해 준비하였는지 알 수 없다. 김기천 교무는 9월6일(음8월9일)에 하단지부에서 열반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김기천 교무의 열반에 “그는 18년간 일호의 사심없이 향내나는 전무출신을 하였다”고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경성에서 시국을 관망도 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통하여 돌아오는 세상을 전망도 했다. 익산 총부에서 제자들에게 ‘돌아오는 세상을 예언’하시면서 “조선은 지금 어변성룡이 되어가건만 누가 아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경성에서 보신 것을 말씀하였다. “…지금도 경성 같은 데에는 직업상담소라는 것이 있어 혹 남의 고용역 같은 것을 소개하여 주는 데가 있거니와 이 다음으로는 상당한 직업소개소가 생겨나서 구직업자에게 편리를 줄 것이요. 또 혼인 소개소도 있어서 장가가고 시집갈 사람들은 미리 자기의 이력서에다가 사진을 첨부하고 그 곳에 제출하여 두게 된다. 그러면서 남녀간에 혼처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소개소를 찾아가서 우선 사진과 이력서 가운데에서 각자의 마음에 맞는 대로 선택하여 가지고, 그 상대자에게 혼인 신입을 하게 되면 그 신입을 받은 편에서는 또 한 그 곳에 가서 그 사람의 사진과 이력서를 찾아보아서 합의하면 실지로 대면하여 약혼 후 결혼을 하게 되리라.…” 소태산 대종사께 원기 21년 여름은 익산 총부에서 경성, 경성에서 부산, 부산에서 익산 총부, 익산 총부에서 다시 영광으로 이어지는 바쁜 일정이었다. 원기 21년 6월15일(음4월26일)에 익산 총부에서 박창기를 데리고 상경하였다가 며칠 후에 익산 총부로 귀환하여 6월24일(음5월6일) 익산총부 제 22회 정기훈련(병자하선) 결제식에서 훈사를 하였다. 총부하선에서 결제식 훈사 후 상경하여 소태산 대종사는 7월4일(음5월16일)에 시작되는 경성지부 병자하선에 참석하여 공부의 강연과 선방규약에 대하여 설법을 하였으며 7월14일(음6월14일)에도 설법을 하시며 법흥을 돋구시었다. 소태산 대종사 강습에 경성회원들이 얼마나 열성으로 참여하였는지, 그리고 신심의 상황을 당시의 경성지부 근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당지부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종사주가 상경하시와 체류 하시던 중 정기훈련을 받지 못한 일반 회원에게 본회 교리를 철저히 이해시키기 위하여 강습회를 개최하고 매일 1시간씩을 교수하시던바 회원 유지제씨는 만난(萬難)을 배제하고 열심 출석하여 대성황을 일구었습니다. 그 중 이윤갑씨도 여기에 출석하기 위하여 석양모정(夕陽暮程)에 황황히 달려 오다가 노상에서 자동차와 정면충돌을 해 그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닥쳤습니다. 빠른 속력에 끌려 그의 몸은 차의 바퀴 밑에 끌려들어가 사람의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때에 관망하는 사람들은 그 비참한 광경을 보고 낙담실색하였고, 그 운전수는 창황실색하여 급급히 구출하려 하였으나 사람의 몸은 이미 차체 밑에 눌려버렸으므로 억지로 밀치고 본 즉 죽은 줄 알았던 그는 의외로 생명에 아무 관계없이 그 전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증상도 별로 없고 다만 피부에 약간 상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를 본 운전수와 일반 관중은 천우신조임을 경탄불이(驚歎不已)하며 그 가족은 오직 종사주의 하감지택을 만만칭사합니다. 이는 과연 우연한 일이라 할 수 없고 오직 사은의 위력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인력으로는 미치지 못할 바이며 사람의 지각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이냐 하면 30여 세의 중년여자로서 불행의 운명을 가져 일찍 부군을 사별하고 독신으로 빈곤한 생활을 계속 하던 중 금춘경(今春頃)에 최원정행씨 지도로 본회에 입회하여 시일은 짧으나 신심은 성실한 중 이번 종사주 성안을 처음 배견하고 저절로 우러나온 환심은 갱생의 친부를 만난 듯 하야 충천의 신앙은 외인의 보기에도 표면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일을 지낸 후 이와 같이 말하나이다. 금번 당한 횡액은 제가 이미 지은바 인데 그 중에서 재생의 세상을 보게 된 것은 오직 종사주의 덕택인줄 의심 없이 믿는다고 한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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