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평화,종교윤리-이찬수(전 강남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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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평화,종교윤리-이찬수(전 강남대학 교수)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3.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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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구윤리가 필요하다.


인류 대다수가 특정 종교 내지는 종교문화와의 관계성 속에서 살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두고서 지구 윤리라는 시대적 요청이 저마다의 종교적 신념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구화, 그 내용과 방향에 있어서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세계는 피치 못하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으며 국가 간 공유의 폭이 급속히 확대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민족국가 시대에서 국제화시대로, 다시 지구화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지구화는 국가들 간의 공감대가 더욱 확장되면서 서로로부터 직·간접적인 간섭과 개입을 ‘사이’만이 아닌 ‘안’에서부터 경험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좁아진 세계를 반영한 용어이다. ‘시공간의 압축’이 일어나면서, 민족국가 단위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의 영역을 확장시켜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일종의 해석학적 용어다. 특히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매스 미디어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서구식 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긴밀히 재편되어가는 세계적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현재의 지구화가 개별성이 약화되고 세계적 일반성이 강화되는 양상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민족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적절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울리히 벡은 지구화를 말하는 것 자체에 이미 지역적 다양성의 존중과 주도 국가들에 의한 가치의 일반화 경향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국제 사회의 불평등이 여전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심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구적 일반성을 비교적 고르게 맞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지구 윤리’가 요청된다. 윤리의 지구화는 소외 계층의 발생 자체를 방지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확장되어야 할 인류의 근본 자세이다. 바로 여기에 종교성 및 종교 윤리와의 접점도 놓여있다.


# 하나의 세계, 종교적 대응


만국종교박람회 백주년을 기념하는 1993년 인도 벵갈 세계종교대회에서는? ‘공유된 세계 윤리를 향하여’, 1883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지구 윤리 선언문’을 주제로 채택 종교계에 지구 윤리 분위기를 진작시켰다. 여기서 한스 큉은 지구 사회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맞이하려면 생태적, 법적, 기술적, 사회적 양태를 새롭게 그려내는 포괄적인 윤리가 긴요하다며 강조했다. 이를 위해 유신론적 종교인이든 무신론적 사회주의자이든 다양한 종교와 이념들이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이미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위한 윤리적 실천의 정신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윤리가 반지구적 행위를 최소화하고 극복하기 위한 길인 한 그것은 필연적으로 반지구적 행위에 대한 개입을 요청한다. 인간 파괴적 윤리 상대주의나 문화 절대주의 앞에서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 위에서 성립된 윤리이기 때문이다. ?


윤리에 ‘최종적’ 가치와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인류 공통의 종교적 신념이다. 최상(宗)의 가르침(敎)으로서의 ‘종교’는 지구 윤리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지구 윤리는 인류의 연대성에 근거한 인간적 공감대를 전제한다. 사실상 인류의 위대한 종교 전통들에서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원리들이기도 하다. 종교 전통들에서는 한결같이 전 우주에 통한다고 하는 보편적 가르침들이 선포되고 있다. 그것이 사실상 지구 윤리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이다.


종교적 진리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지구적’이다. 이러한 지구적 진리를 구현하는 방식에서도 각 종교들은 공통성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종교 윤리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남도 하게 하는 상호적 사랑의 윤리라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공통적이다. 황금률의 실천이야말로 보편적 종교 윤리이며, 그러한 실천이야말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가장 급진적인 지구 윤리이다.?


# 지구윤리와 종교윤리의 접점


특정 종교 윤리를 세속적 지구 윤리와 상통시키는 해석학적 접근을 한 대화신학자 레너드 스위들러는 보편적 신학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도 각각의 종교적 전통 안에 있는 사상가들이 자신의 신학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들, 용어들로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용어는 현재 통용되는 여러 언어들로부터 선택해서 창안된 국제어인 ‘에스페란토어’에서 따온 말로서, ‘위로부터’나 ‘밖으로부터’제시된 권위적이고 독점적인 언어가 아닌, 인류가 사용해온 언어이면서도 인류 공통의 인성을 토대로 한 ‘아래로부터’의 언어, ‘안으로부터’의 언어를 말한다.


지구 윤리는 대단히 균질적이다. 중심 국가에게 요청되는 지구 윤리와 주변 국가에게 요청되는 지구 윤리 간 구분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적 보편성에 담긴 균질성이 획일적으로 요청되는 까닭에 지구 윤리는 또 다른 제국주의적 자세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자칫 평화라는 것도 강대국에 의해 주어진 수동적이고 주변적인 것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윤리의 보편성은 윤리의 비균질성을 얼마나 적절하게 구사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실천이 개체성 내지는 지역성을 살아있게 해준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황금률이 중심 국가와 주변 국가 간 갈등 속에서는 어떻게 구체화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와 개개 지역민 간 갈등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황금률은 무엇보다 나와 이웃 간에서 적용되어야 할 일이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자 이웃과 관련되고 적용되는 이야기일 때 평화는 이루어지고, 종교도 그 성숙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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