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원 지환선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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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원 지환선 정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10.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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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선 교무의 서울교화 창립 유공인들

경성지부 창립주 16인 중 한 사람인 현타원 지환선은 경기도 진위에서 부친 지동인 선생과 모친 이청수화 여사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라 15세에 같은 고향 이기찬과 결혼 하였다. 하지만 부군이 나이가 연소하고 양친도 계시지 않은 어려운 가정형편이었다. 지환선은 친정의 도움을 받아 부군을 중학부터 가르쳐 변호사가 되도록 뒷바라지 하였다.


그러나 부군은 마음이 변하여 평양에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지환선은 허무하고 믿을 곳이 없어 비관하며 7~8년의 세월을 보내다 30세에 불교로 출가의 원을 세우고, 시내 사찰을 다니며 설법을 많이 들었다.


지환선은 원기 16년 초에 신원요의 인도로 소태산 대종사를 뵙고 귀의해 같은 해 6월에 익산총부를 방문하여 이 공부 이 사업에 헌신하기로 서원하였다. 그는 매년 동·하선 훈련은 물론 평상시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공부하여 육대요령을 세권이나 헤어지도록 공부하였다.


원기 18년 경성출장소에서 새 회관을 돈암동에 건축할시 1,300원으로 시작하였으나 공사비가 2,000여 원이 들었다. 부족한 공사비를 지환선이 대부분 보조하고 영광회원들이 보조하여 완공하게 되었다.


경성지부 이완철 교무는 회보에 발표한 <경성지부 신축 낙성에 제하야>라는 글에서 “이동진화 씨는 뿌리를 숨기고, 이공주 씨는 줄기와 가지를 배양시키고 지환선 씨와 여러분은 잎과 꽃을 피게 하였다…”라고 했다.


지환선은 평소에 예회 참석을 생명처럼 여기었다. 원기 19년 어느 예회 날, 병이 위독하여 몸이 인사불성의 지경에 이르렀으나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예회에 참석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다음 예회에도 부축을 받으며 참석하였다. 결국 굳은 심심에 병마를 물리치고 회복되자 경성 교무 이완철은 <지환선의 독실한 신성을 보고>라는 제하로 회보에 발표하며 그의 신성을 본받자고 했다.


원기 19년부터는 경성지부 순교로서 경성지부 교화에 남다른 열성으로 사가생활 보다는 교중사업이 확장되는 재미로 생활하였다. 원기 24년에는 전무출신을 하기 위해 출가해 경성지부 순교와 남선지부 순교를 거쳤다.


원기 28년에 경성지부 교무로 임명되어 주위의 어떠한 비평과 조소에도 교법을 선양하여 많은 인연을 얻었다.


원기 38년 제1대 성업봉찬대회 시 지환선의 공부는 정식법마상전급, 사업은 정1등으로 원성적 준1등이었다. 원기 73년 제2대 말 성업봉찬시 공부성적을 정식법강항마위로 추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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