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빈국 중 하나, 킬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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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빈국 중 하나, 킬링필드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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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희망의 빛을 찾아서 1, 최지운 교무 (바탐방 선교소)



세계 최빈국 중 하나, 킬링필드, 인구수보다 지뢰가 많이 묻힌 나라 캄보디아.


캄보디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잔뜩 긴장했었던 2002년 초, 두툼한 코트를 입었던 겨울을 뒤로하고 여덟 시간 후 열대의 나라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후텁지근한 바람. 같은 몽골리안이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들, 너무도 생소한 언어. 낯설지만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었다. 그러나 왠지 정겨운 사람들. 우리는 언제 만난 적이 있었을까?




# 바탐방의 첫인상


프놈펜에서 잠시 새 생활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병원 설립을 위해 바탐방시로 이동했다. 바탐방은 우리 단체가 돕고있는 고아원(Peaceful Children Home Ⅱ)이 있는 인연지이기도 하고, 이곳에 병원을 세워 질병의 고통속에 있어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빈곤층을 돕겠다는 박청수 이사장님이 병원설립의 계획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바탐방으로 와서 평화로운 어린이집 2층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며 이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로 옆 돼지우리의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벽에 기어 다니는 도마뱀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감시하는 초긴장의 시간들. 저녁에는 벌레 때문에 2-3시간 잠깐 들어오는 전기도 켤 수 없어(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해가 지면 일찌감치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방충망이 없는 창문으로 들어 온 박쥐에 놀라 비명을 질러서 고아원 아이들이 재밌어라 구름처럼 방으로 몰려오기도 했었다. 아니 박쥐는 동굴에나 있지 왜 사람 사는 방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참…. 우기가 되니 지붕이 허술하여 침대에 누워 얼굴에 비를 맞기도 하고, 방문만 열어놓으면 아무 일없이 와서 우리 얼굴만 구경하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워도 문을 닫고 땀을 줄줄 흘리며 뜨거운 차로 목을 축이고 경전을 봉독했던 시간들.


사람들과는 선한 눈빛과 우리를 해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으로 나누는 미소가 대화의 전부였지만 서로의 마음이 언어에 우선함을 느꼈다. 우리를 위해 주고 챙겨주는 그 따스함이 어떤 말보다 깊이 와 닿았고 그 속에서 우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말만 하지 않으면 그냥 한국에 있는 듯한 친숙함으로 우리들의 생활은 점점 안정되어 가고 병원설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부지 1헥타르를 매입하고, 단체를 Ven. Mother Park Chung Soo’s Won-Buddhist Relief Foundation 국제NGO로 캄보디아 외무부에 등록하고, 보건부에서 병원 허가를 받았다. 건축과 모든 일들은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우리의 뜻대로 잘 진행되었다.


바탐방은 인구 45만 명에 7개 구로 나누어져 있다. 주산업이 농업으로 캄보디아 제2의 도시이며,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처음 왔을 당시는 비포장에 7-8시간씩 걸렸다.) 박청수 이사장님은 캄보디아 난민을 1988년부터 돕기 시작, 스레암필 고아원 설립 후원(Peaceful Children Home Ⅰ), 지뢰제거 지원, 바탐방 고아 전원 식비 지원(Peaceful Children Home Ⅱ), 장학금 지원, 우물·저수지 사업, 의류지원 등등 많은 일들을 캄보디아 전 국회부의장 손 수베르트씨와 세계 MRA를 통하여 13년간 돕기를 계속해왔다.




# 무료구제 병원을 열고


박청수 이사장님은 2001년 12월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의료봉사팀과 함께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그 실상을 깊이 알게 되었고,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희망이 없이 살고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이곳 바탐방에 우리가 직접 들어오게 된 것이다. 현지인 의사와 간호사를 채용하여 2003년부터 진료를 시작했고, 2008년 현재까지 연인원 8만 5천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될 환자, 혈압이 너무 높아서 당장 쓰러질까 두려운 환자, 병원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아픈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가는 환자, 병원 근처 시장에 왔다가 무료로 약 준단 소리를 듣고 오는 환자, 너무 부끄러워서 의사 선생님에게 어디가 아프다고 말도 못하는 환자, 출석부에 도장 찍듯이 5일에 한 번씩 병명을 바꿔가며 꾸준히 약을 받아가는 성실한 환자,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본인이 먹고 좋다고 이웃 사람에게 자기 약을 먹이고서는 본인 약이 벌써 떨어졌다며 오는 환자 등등, 각양각색의 환자들이 매일 이곳 무료구제 병원을 찾는다.


처음 병원 문을 연후 2년 정도는 7시 30분부터 12시까지 오전 진료만 하는데 거의 매일 200여명의 환자들이 밀려와서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환자들이 생겼고 심지어는 새벽 1,2시에 병원 대문앞에 있는 나무에 해먹을 걸고 자면서까지 번호표를 받으려고 경쟁을 한 적도 있었다. 환자들이 많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지고 자연히 병원에서 간식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머리를 뒤집고 서로 이도 잡아 주는 등 동네 사랑방으로 변해 갔다. 풋풋한 웃음이 나오는 정겨운 풍경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지쳐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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