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칫집엔 은혜 짓는 부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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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칫집엔 은혜 짓는 부엌이 있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5.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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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장을 찾아서 / 원불교 생일 나누고 베푸는 신림교당





“어유, 이게 벌써 몇 년째인데요. 이제는 그냥 눈감고도 착착이죠.”


꿍짝이 딱딱, 보는 사람이 더 신나는 신림교당의 부엌. 한쪽에선 새벽부터 끓인 육수 간 맞추고, 한쪽에선 한아름 쌓인 국수 면발이 끓는 물 잠수를 기다리고 있다. 4월 28일 국수 공양할 총 인원만 500여명. 그리 큰 작업인데도, 신기하게 고명팀이며 잡채팀, 후식팀에 이동 전담 운반팀까지 말도 없이 짜여져 손발을 맞춘다. 역시 대각개교절 은혜공양의 메카, 신림교당답다.




# 명품 국수, 전통 국수


“우리의 기쁜 날일수록 나누고 베풀어야 하지요. 대접하는 마음과 정성만큼 일년 교화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고명 하나도 모양 나고 예쁘게 썰지요.”


대충하려면 쉽게 할 수도 있으면서, 공을 들이려면 끝도 없는 신기한 음식 잔치국수.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빠른 시간 안에 먹이기 위해 선정된 메뉴지만, 곧 신림 교도들의 손끝 정성들이 들어가 ‘명품 국수’로 거듭났다. 노른자 흰자 지단과 호박 볶음, 당근에 김, 5색 알록달록 딱 맞춰 진한 육수까지 뜨듯하게 부어준다. 양념장 휘휘 치고 이틀간 담근 연한 열무김치 올리면 이 약한 어르신들도 술술 후르륵, 다소 많아 보이는 한 그릇도 가뿐하다.


한편, 천막도 쳐야하는 서울대학교 팀은 이미 이른 아침 교당 부엌을 나섰었다. 4백인분이 넘는 양을 미리 준비해갈 수는 없는 법. 밤새 끓인 육수를 졸이고, 이틀간 고명만 미리 준비하고 국수는 학교 안에서 삶는다.


“저 새내기때 선배가 데려와서 먹어봤거든요. 군대 갔다와서 지금 4학년인데 새내기들한테 ‘이것도 우리 동아리 전통’이라면서 데려왔어요.” 그가 데려온 신입생은 무려 9명, “많이 주세요~ 저희 배고파요~”에 “원불교 생일 완전 축하드려요~”라는 애교까지 덧붙인 파릇파릇함 덕에 교도들도 신이 난다. 내 자식 같아 잠깐 세워놓고도 미안해 하는 그녀들, 나눠준 원불교 홍보 리플렛을 꼼꼼히 보는 학생들에겐 자연스레 면이며 고명이 더 올라간단다.




# 원불교 도넛 3종 셋트


한바탕 국수 잔치가 끝난 오후, 이젠 정리하려니 했더니 아직 나눌 은혜가 남았단다.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원상 도넛 만들기’. 젊은 엄마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어린이들이 신발끈을 질끈 맨다. 교당 앞에 천막을 열고 반죽에서 튀기기까지 직접 볼 수 있는 원불교 도넛 가게, 홍보 리플렛·가시연꽃·일원상 닮은 도넛 이 ‘3종 셋트’의 가격은, 물론 무료다. 엄마들이 만들어내는 대로 아이들이 지나는 사람들에게 “원불교 신림교당입니다. 오늘 원불교 생일이에요~” 라며 착착 홍보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뒷정리중인 부엌은 고단하면서도 한편으론 힘이 펑펑 솟는다.


뭐든 나누길 좋아하는 신림의 부엌에서는 항상 은혜가 지어져 나간다. 대각개교절 경축기도 시작 기념으로 독거어르신 30가정에 담가 드린 김치도, 인근 10여개 관공서에 선물한 생일 떡이 만들어진 곳도 바로 이 부엌이다.




# 은혜로 인연을 만날 때


신림5동 경로당, 한 백발 어르신이 이선조 교무의 치맛자락을 잡고 가까스로 일어선다.


“나가 영광 백수 출신이어라. 선상님들은 아시지라? 길룡리, 나가 어릴쩍에 거그서 왔어라.”


원불교 교무들은 다 고향 사람 같아 잊고 지냈던 사투리가 먼저 튀어나온단다. ‘원불교 만든 양반이 길룡리 사람’이란 걸 알고, 매년 생일잔치하는 신림교당을 기다렸다는 김 할머니. 교도들이 한지로 접은 가시연꽃을 가슴에 붙인 채, 할머니는 이 교무의 두 손을 꼭 안아 쥐고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


민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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