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대한 일관된 신뢰와 지지
상태바
교단에 대한 일관된 신뢰와 지지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9.02 0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원불교



이제는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마침표로 찍힌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여러 종교지도자들을 늘 가까이 하며 조언 구하기를 즐겼다. 원광대학교와 교단과의 인연도 소중히 지켜왔던 그는 원불교에 대한 신뢰가 높아 교단이 사회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일관된 지지를 보냈다.


그의 원불교에 대한 배려는 취임식에서부터 돋보였다. 국가적 행사에서의 교단 대표의 위치를 격상시켰던 것. 당시까지 종교계에서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대표만이 국가적 행사 단상에 올랐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자 자격으로 원불교를 포함시켜 줄 것을 직접 총무처에 요청하면서 우리 교단은 국가의전 때마다 이웃종교 수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었다.


원불교에 대한 故 김 전 대통령의 신뢰는 원음방송 허가 건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처음 서울과 부산, 전북 원음방송 허가를 요청했을 때, 당시 YS 정권은 교단의 방송국 운영 능력을 불신하며 뉴스와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북 만 허가를 해주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원불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울과 부산 방송, 뉴스, 광고방송까지를 허가해 줌으로써 원음방송의 오늘이 있도록 해주었다. 원음방송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시작과 시기를 같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그는 1987년 11월 24일과 1992년 12월 9일, 대선 후보자 신분으로 두 차례나 총부를 내방한 바 있다. 특히, 첫 방문에서 대산 종사는 ‘중산(中山)’이라는 호를 내리며 “나 혼자 잘 살려면 중직(中直)해도 좋다. 그러나 한 가정을 넘어 나라를 좋게 하려면 중화(中和)를 가져야 한다. 또한, 세계를 좋게 하려면 중도(中道)가 있어야 한다. 중직·중화·중도를 이룰 것 같으면 천지가 품안에 돌아온다. 일원의 진리와 천지가 만물을 다 형성하기에, 김대중 후보에게 호를 중산이라 드린다”하시며 환담했다.(사진)


더불어, 1994년 3월 17일 원광대학교에서 국내대학 첫 명예정치학박사를 수여하면서 교단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또 한번 이어가기도 했다.




‘원불교 조선생’ 조정근 전 교정원장의 회고




교단 대표로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장 많이 만났던 조정근 전 교정원장은 국장 영결식을 맞아 “참으로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스쳐지나간다”고 천천히 말을 뗐다. 그들의 인연은 故 김 전 대통령의 옥중시절, 조 전 교정원장의 휘경학교 교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음악선생의 시아버지가 이희호 여사의 친오빠였는데, 자택도 학교와 담 하나 차이였다. 그러다 친오빠가 열반했는데, 청량리경찰서 형사 2명이 나와 국회의원 뿐 아니라 문상을 무조건 막았다. 당시 교장이던 조 전 교정원장은 형사들에게 차 한잔씩을 주며, “학교와 담 하나 차이로 있는 이웃 사촌이다. 하교길에 선생들하고 문상 갈테니 길을 비켜주시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들어선 빈소에는 다른 형제 가족도 없이 이 여사 혼자 쓸쓸히 앉아있었다. 그 날 밤, 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빈소를 지킨 조 전 교정원장과 교사들에게 이 여사는 두고두고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후 故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전후, 종교지도자모임 등에서 이희호 여사 바로 옆에 조 전 교정원장 자리를 마련하고 축하 메시지를 먼저 청해 듣기도 했다.


전팔근 원로교무와 서울대 사범대 동창이기도 한 이 여사와의 이런 인연으로, 조정근 전 교정원장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자연스레 친분을 쌓아갔다. 그를 “역대 대통령 중 대종사 호칭을 가장 정확히, 자연스럽게 구사하신 분”이라며, 故 김 전 대통령은 꼭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는” 이라는 서두로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제자들을 어찌 그리 잘 지도하셨기에 원불교인들은 만날 때 마다 절로 머리가 숙여지더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국가 중대사나 개인적인 고민에 있어 종교지도자들을 만나고 자문 구하기를좋아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전화로도 조언을 들을 정도로 소탈하면서도 귀가 큰 분이라며 그를 추억하는 조정근 전 교정원장은 故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원불교 조선생’이라 불리며, 서울사무소장시절 그의 사택에 초대됐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혼자 식사를 하려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하더만. 원불교 친구 둘을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원산 이제성 · 항산 김인철 교무를 모시고 갔지. 갔더니, 흑산도에서 올라온 홍어 한 마리가 딱 올라있는 거야. 그 날 홍어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늦게까지 화기애애했던 게 기억나.”


통찰력이 강하고, 추진력과 결단력이 컸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문병 간 조 전 교정원장에게 남긴 것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친필이 새겨진 항아리였다.


“참 주밀한 분이었어. 한마디라도 반드시 메모해서 외웠을 정도였지. 보통 사람이 주밀하다보면 소심해질 수도 있는데, 그 분은 대담함까지 갖추었어. 그게 그 양반을 그리 강직하게 살게 하는 거구나, 생각해서 본받으려 했던 게 생각이 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