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와서 할아버지 안마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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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와서 할아버지 안마 좀 해라"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9.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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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인절 특집 인터뷰 / 사산 오창건 대봉도 친손주 오성직 교도



“후일에 할머니께 들으니, 할아버지께서 서슬 퍼런 칼 한자루를 처마 밑에 넣어두셨대요. 어느날 여쭤봤더니, 다른 말씀 없이 ‘때가 올 것이오’라고만 하셨대요. 고민하던 한사람만 마음을 결정하면 된다고도 하셨대요. 그게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를 이루어낼 걸 그때 할머니는 모르셨던거죠.”


대종사 구인제자인 사산 오창건 대봉도를 떠올리는 오성직 교도(개봉교당)는 인터뷰 내내 “내가 조금만 더 컸었더라면 더 많이 기억할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구인제자의 친손주로 살아온 70년 동안 열다섯까지의 어릿한 기억이 아쉬웠으리라.




영산을 지킨 ‘작은 대종사’


영광군 백수면 학산리에서 태어난 오창건 대봉도는 제자들과 함께 선 사진에서처럼 주로 지게를 맨 채 대종사를 보필하거나 전국 방방곡곡 공사 현장의 감독을 지냈다. 기골이 장대하고 몸짓이 대종사를 꼭 닮아 ‘작은 대종사’라 불렸던 오창건 대봉도는 구인선진 중에서도 주밀하고 철저한 성격과 티끌없는 공심으로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대종사 선을 나기 위해 나선 길에 곡식들을 이고 따라나선 것도 그였으며, 6·25 때 낮밤없이 영산을 지켰던 것도 그다.


“전쟁 때라 경찰들이 와서 밥을 100인분, 200인분씩 시켰어요. 밤에는 군인들이 귀찮게 하고, 빨치산들도 종종 와서 훈련소가 되기도 했었어요. 그때 할아버지와 고모부(서만국), 화산 김석원 할아버지, 시타원 할머니와 아주머니 한두분이 그 밥을 다 해주면서 영산을 지켰어요.”


교사에서나 읽었던 교단 초기 선진들을 부르는 그의 호칭은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다. 영산학원 앞마당에서 놀다가 “인사해라, 종사할아버지시다”라는 말에 검은 학복을 입은 ‘풍채가 크고 절로 우러러 뵈지는’ 대종사께 인사했던 어린시절이었으니, 선진들 회고도 동네 어르신들 얘기하는 마냥 자연스럽다.


“할아버지가 태을교 법당에 오가는 동안 노루목을 지나셔야했대요. 그러다 근처 어떤 사람이 대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그 양반한테 가서 공부할란다’ 하시고는 그 날로 대종사님에게 가셨어요.”




근검절약이 몸에 밴 어른


오창건 대봉도는 사가에는 잘 오지 않았으며, 영산에 가는 길에 스윽 보고 가는 게 다였다. 그래도 집에 오면 친구들이나 나무하는 사람들에게 ‘집사람 좀 챙겨줘라, 밭갈이 때면 좀 도와줘라’라며 부탁을 하곤 했었으며, 한번은 대적산 중간 세를 준 집에 일곱 살이던 오 교도를 데려가 과일들을 따주기도 했다.


“영산원에 계실 때가 제가 열 살 때쯤이었는데, 아침마다 문안을 하러 갔었어요.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하면 ‘그래, 와서 안마 좀 해라’ 하셔서 등도 두드려드리고 했지요. 손주들을 예뻐해주시기도 했는데, 뭘 잘못하면 하도 엄격히 혼내셔서 무섭기도 했어요.”


한번은 손주들을 데리고 총부에 다녀오는 길에 운전사와 차표값으로 한참을 실랑이하기도 했던 오창건 대봉도는 문헌에서 밝혔듯 근검과 절약이 몸에 배어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손주들에게 눈깔사탕이라도 사주련만, 오 교도는 “다만 흰 노트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갱지 묶음 수준이었던 당시로서는 흰 종이로 된 노트가 귀한 것이었다고 회고하는 오 교도.


“어느 날 할아버지가 저를 불러요. 영산원에 계실 때 였어요. ‘나 죽으면 화장해라’ 하셔서 ‘화장이 뭔데요?’ 물으니 얘기를 해주세요. ‘내가 어떻게 할아버지를 태워요? 안할래요’ 그랬더니 ‘그냥 묻으면 썩고 벌레 생기니까 그렇게 해’ 하셨어요.”


열세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에 할아버지를 여읜 오성직 교도는 원기 78년부터 10년간 교도회장을 하며 원불교교사회 4대와 5대 회장을 지냈다. 할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교학과에 다녔으나(원기 44~50년), 할머니의 병세가 위중해 영광에 내려간 길로 환속했던 그는 이후 전남 길용초등학교, 서울 강남중학교 등에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현재 상도중학교에서 배움터지킴이로 근무중이다.


민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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