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정진 밀행제일 무상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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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정진 밀행제일 무상도인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5.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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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산 종법사 법문 / 상산 박장식 대원정사 발인식 부연법문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당신을 대원정사로 추존했다고 하면 지금 영계에서도 손사래를 치실 것 같습니다. 제가 뵈 온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참으로 사양지심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뵈오면 뵈올수록 진실하고 진솔하신 모습이 마음에 와 닿는 그런 어른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큰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서도 대접에는 너무나 소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예상을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원불교 100주년은 보고 떠나셨으면 했는데 이렇게 열반의 길을 떠나게 되니 마음 한편이 허전하고 슬픔도 그만큼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에 상산 대원정사님을 대각여래위로 모시게 된 것은 원불교 100년을 앞둔 우리 교단으로서는 매우 크나 큰 경사이기도 합니다.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을 앞두고 지금 우리가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성업봉찬으로 수많은 성자들을 배출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원불교 100년 성업을 앞두고 우리가 상산 대원정사를 5번째 대각여래위로 모신 것은 자신성업봉찬운동에 불을 지펴나가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산 대원정사님을 처음 뵌 것은 원불교에 막 들어와 간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고 살았는데 워낙 어린시절이라 이 어른이 행선을 하시던 모습이나 자력생활을 하시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제 몸에도 배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는 않으셨어도 있는 그대로 정진적공 실천궁행하시던 모습, 그 자체가 가르침이셨습니다. 특히 법도있고 규칙적이셨던 생활모습은 지금도 마음 가운데 깊이 어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인욕선인이셨던 것 같습니다. 상산 대원정사는 전북 남원의 대단한 한림가문의 부자집 자제로 유수한 체격에 경성제대까지 나온 촉망받는 재원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소태산 대종사님을 뵙고 원불교에 들어와 새 회상 초창기 간난한 생활을 견뎌야 했으니 그 얼마나 참을 거리가 많으셨겠습니까? 먹을거리도 부족하고 잠자리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 그것도 소년 출가한 분들도 많았을텐데 늦깎이로 출가를 하셨으니 거기서 오는 어려움은 또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더구나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민족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으니 그 인욕수행이 얼마나 크고 힘드셨을까 짐작이 갑니다. 아마 우리가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것들을 안으로 삭히고 삭혀 영성을 다져오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어른이야말로 참다운 인욕선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는 것도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생멸없는 도와 무상의 도를 바탕으로 참음이 없이 참는 모습을 나투신 어른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러한 스승님의 인욕정신을 수도인의 근본되는 심력이라고 믿고 늘 닮아가려고 합니다.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또한 밀행제일이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출가를 해서 와보니 “대산 종사님은 배짱제일이고 상산 종사님은 밀행제일이다”는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상산 대원정사님을 가까이에서 모셔보니 남 모르게 이런저런 것을 곳곳에 참 많이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갚을 수 있는 곳에 보시를 하면 거래가 되고 장사가 되지만 갚을 수 없는 곳에 그것도 알지 못하게 베풀면 음덕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수도인들이 참으로 본받아 행해야 할 일입니다.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덕을 베푸는데 있어서도 항상 남 모르게 하셨고 매사를 조용조용 소리나지 않게 처리하셨습니다. 항상 일에 임하시는 태도라든지 일에 임하시는 모습을 뵈오면 언제나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학교도 설립하시고 미주교화도 하시고 언제나 교단 곳곳에서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셨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아봉공의 표준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밀행과 음덕제일인 산 부처님을 아주 가까이 모시고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무상대도인이셨습니다. 상산 대원정사께서는 명문대가의 후예에 신언서판이 모두 갖춰진 어른이십니다. 할아버지는 의병장을 하시다가,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을 하셨습니다. 그런 가문에서 출가를 했으니 내가 한번 종법사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능히 가질만 한데도 소태산 대종사님 이하 역대 종법사님들께 오롯하게 신성을 바치셨습니다. 정산종사는 물론 8살 연하였던 대산종사님을 모실 때에는 가방을 받아 들어 주실 정도로 깍듯하게 모셨고, 좌산 상사께서 종법사 위에 추대 되실 때에는 20년 이상 연하인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오체투지로 교단의 종통과 법통을 바로 세워주셨습니다. 그 때 그 모습이야말로 무상 대도인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 여래의 법위를 가진 어른이 여러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어떻게 제자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신 표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깨달아 그것을 연구하고 실천해 나가다 보면 누구나 법위가 향상되고 부처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부처님은 세상을 유희장 삼아 놀다가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부처님은 사업장 삼아 열심히 일을 하다 가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산 대원정사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업장으로 삼고 사셨던 부처님이시자, 상없는 제자상을 나투어 주신 부처님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이 참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위를 앞세우다보면 결국 그 위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래께서 위를 세우지 아니하고 참 제자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고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교단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산 대원정사께서 나투어주신 그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천추만대에 길이 받들고 모셔야 할 정신이라 생각하며 평소 주문처럼 외우셨다는 최후법문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그 뜻을 이어갈 것을 약속합니다. “둘이면 안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잘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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