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교화', 그리고 '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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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교화', 그리고 '교화'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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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인터뷰 / 김창규 서울교구 신임 교의회의장을 만나다

# 소통,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


“광범위하게 교도님들과 교화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자리에 앉아 마자 거두절미하고 ‘교화’라는 화두를 꺼내드는 신임 김창규 서울교구 교의회 의장(승산, 남서울교당). 중견기업(넥스콘 테크놀러지)의 경영진으로 몸이 둘이라도 부족한 상황임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교화’뿐이었다.


“교구장님도 계시고 교구 상임위도 있으니 제가 여기에 바탕해 앞으로 협의를 계속할 예정입니다. 현장이 움직여야 합니다. 위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정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논의 과정에 자발적 참여가 있어야합니다. 교화에 관련한 논의를 교도님들과 함께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전법교화에 대한 의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전략과 실행방안이 나와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 어투는 담담했지만 그 어감은 단호했다.


“교화가 정체된 상황에서도 군교화가 희망의 싹을 키우고 있어요. 대학생과 청년교화를 여기에 발맞춰서 해야 합니다. 서울교구의 교화현황을 살펴봤더니 쉽지 않습니다. 과연 대학생 교화의 돌파구가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의제를 모아 발표와 시상도 하고 교화성장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듣고, 지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대학생과 담당 교무들이 함께 논의하고 모든 의견을 합해야 합니다.” 취임 직후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바로 청년과 대학생 교화라고 밝힌 김 의장은 이 부분을 거듭 강조했다.


원불교의 한 세기가 완성되는 원기 100년을 앞둔 지금, ‘교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국내교화 결실의 측면에서 서울 교화를 지금보다는 더 끌어 올려야 합니다. 또한 경상도 지역 그중에서도 경북 은 불심이 강한 지역인데, 많이 취약합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 더 공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내교화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원음방송을 십년이상 하고 나니까 전국적으로 방송을 듣고 교당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처럼 교화성장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조적인 부분들을 찾아서 노력해야 할 시점입니다. 가령, 총부에서는 사이버교화에 힘을 들이고 있고 서울교구에서는 교화구조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서울회관 재건축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많은 중요한 과제들이 하나같이 현장과의 광범위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들 이죠” 이번에도 역시나 교화성장을 위한 현장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었다.



# 「교전」에 사로잡히다.


새삼 이 회상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부모님이 모두 법강항마위셨지요.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 대학 다니던 시절(서울대 경영학과)에는 교회를 열심히 나갔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었구요. 그러다가 어머님이 ‘원불교’라는 데를 다닌다는 말씀을 듣고 걱정이 되었어요. 당시에는 원불교를 잘 모르던 시절이니까 제가 거기 뭐하는 곳이냐고 여쭈었죠. 어머님이 교전을 주시고 “너는 대학생이니까 읽어보면 알 것이다” 하셨습니다. 교전을 받아들고 정전 첫 페이지 교법의 총설부터 컬럼버스 신대륙과도 같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읽고는 이것이 바로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혼식 당일도 부산교당에서 기도를 하고 식을 올렸어요. 이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촌교당에서 10년, 다시 신창원교당에서 19년 교당생활을 했지요. 다시 서울로 와서 남서울교당에서 지금껏 마음공부하고 있습니다.”



# 이 복을 다 어쩌실 겁니까?


불사(佛事)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덕을 짓는다는 김 의장, 남들은 여유가 있어서 그러는 줄 알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형편에 상관없이 불사에 대한 열정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촌교당을 다니다 신창원교당으로 내려가던 무렵이 대종사님 탄백을 일 년 정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여유가 없는 형편에서도 신촌교당에서 6년에 걸쳐 두 차례의 적금불사에 동참했었지만 창원에 내려와서 다시 불사권유를 받고는 큰 액수도 아니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3개월 할부 불사를 하기도 했던 추억도 있네요. 집사람은 속이 탔을지 모르지만요.(웃음) 창원에 가서도 도타원 이관도 교무님(당시 신창원교당 교무, 원음방송 사장) 인연으로 세계 곳곳의 교당불사와 국내 시골교당들 불사에 조금씩이라도 협력했습니다. 리스트를 뽑아서 제가 힘닿는 한도에서 불사를 우선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원경고등학교, 부산원음방송, 경남교구청 같은 큰 불사에도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고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법신불 사은님께서 더욱 보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에게 슬쩍 교무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교무님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도반이 있기에 제가 ‘인정받고 싶은 그 마음만 내려놓고 교당을 위하여 무었을 할 수 있는지 교무님을 무었을 도와드릴 수 있는지 찾아서 하다보면 저절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무님들께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다들 건강하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질문한 기자가 무색할 만큼 사심 없는 대답이었다.


“교도님들께는 모두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원기 백년을 앞두고 교화구조개선 등 다시 한 번 교화대불공에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당부 드립니다.” 그와 함께 내딛을 서울교구의 원기99년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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