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토론 -‘진공묘유眞空妙有와 선과 악’의 분기점-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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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토론 -‘진공묘유眞空妙有와 선과 악’의 분기점-Ⅲ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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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

뭔가에 대해 논쟁을 하려면 먼저 개념에 대하여 상호 정립을 해야만 하고, 교리 문제라면 법문 해석이 우선입니다. 안중근도 이토오히로부미도 동양의 평화를 주장했습니다. 이토오는 일본을 맹주로 여타 국가들이 복종하는 평화를, 안중근은 인본주의에 기반한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의 평화를…. 똑같이 평화를 얘기하면서 전쟁을 해야만 하는 사태. 다시 말해 개념정립 내지는 법문 해석부터 툭 터놓고 제대로 해야만 논쟁이 논쟁다워지고 제대로 된 결론이 도출된다는 얘기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주신 바 주제 ‘진공묘유와 선과 악의 분기점’이란 제하의 토론에 참여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논쟁의 근거는 아무래도 대종경 성리품 2장 “사람의 성품이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이 되겠습니다.
사람의 성품이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다 - 성품이란 것이 고정 불변의 체(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무아(無我)라 합니다.
사람의 성품이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다 - 고정 불변의 체가 없는 그것이 변화무쌍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어서 가히 무상(無常)입니다.
이 무아 무상의 그것이 현상 세계에 나투어질 때 있어지는 법칙이 인연과(因緣果)여서 선(善)은 상생의 과보를 낳고 악(惡)은 상극의 과보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행하는 선악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선악이라 당사자가 심신작용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은생어해 또는 해생어은으로 전개
된다 함이 소태산의 지론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다”이 말씀은 성품의 ‘가치중립’을 표방하여서 마치 ‘도구’로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도구로의 역할이라 함은 예컨대 여기 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칼을 도둑이 쓰면 흉기가 되고 주부가 쓰면 유용한 도구일 뿐 칼 자체는 선
도 악도 아닙니다. 어디 칼뿐인가요. 불도물도 자동차도 다 그렇습니다.
더 풀어서 얘기하면 정한즉 - 도마 위의 칼이 가만히 있은즉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닙니다. 동한즉 - 그런데 칼이 저 혼자 제 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칼 쥔 주인의 심신작용을 따라 흉기도 되고 이기도 되어서,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다 하는 겁니다.
따라서 분별성과 주착심도 자성의 발현이요, 성품의 작용이라 하심은 칼이 살인을 하고 불이 방화를 한다는 말과 같아서 사실이 아닙니다. 말씀드리거니와 분별성과 주착심은 업습(業習)에 휘둘린 중생심으로 본질면에서 헛것입니다.
주제로 주신 바 선악의 분기점은 지금 여기 이 마음. 정산종사께서 원리편 10장의 말씀으로 설하였듯이 선악미추 호오염정이 없는 성품, 자성 자리에서 순하게 발하면 선이 되고 거슬려 발하면 악이 됩니다. 그리하여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요람함을 수긍은 하되 휘말리지는 않는 정력(定力)이 관
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 고대승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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