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 불교의 대화(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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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불교의 대화(Ⅰ)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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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별기획 /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사무국장)


전통과 개혁 - 상



필자는 기존의 연구에서 원불교가 불교의 역사와 사상과 문화는 계승했지만, 전통 종단 혹은 교단과는 단절되어있다고 봤다. 그리고 전통 불교를 개혁한 구제척인 내용은 불법승 3보(三寶, tri-ratna)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으로 본다. 최근 필자의 이러한 사상적 논지를 현존하는 한국의 불교 종단과 비교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불교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을 지칭할 수 있다.


이들 교단은 사실 현대에 들어와 탄생된 교단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1962년에 출범한 대처와 비구의 통합종단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천태종은 1966년에 설립되었고,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대처승이 중심이 되어 분종한 한국불교태고종은 1970년에 창종되었다.
이렇게 젊은 교단들이지만 원불교와 다른 점은 과거 한국과 중국 조사들의 가르침을 종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종단들은 불법승 삼보를 경배하며, 각각 전통적 교상판석(敎相判釋)을 계승하여 종학(宗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통에 강하게 뿌리박은 종단들임을 보여준다.
먼저 불보(佛寶)에 관해 보자면, 이세 교단은 석가모니불(kyamuni Buddha)을 본존(svadeva, 本尊)으로 모시고 있다. 본존은 그 종단의 종파의 성격에 의한 종지(宗旨), 소의 경전, 신앙적 전통 등과 관계가 있다. 물론 각 종단은 자신들의 전통이 최종적으로 석가모니불의 깨달음과 가르침에 기원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조계종은 중국의 임제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그 깨달음의 근원을 역사상의 부처인 석존의 성도(成道)에 기원을 두고 있다. 즉, 조계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로 한다고 한다.
천태종 또한 중국의 천태종을 계승하며, 최고의 소의 경전인 ‘법화경’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한다.
태고종의 종지 또한 조계종과 같으며, 종명에서 보듯 고려 태고보우 국사(太古普愚國師, 1301~1382)의 종풍을 계승하는 것으로 하지만 조계종과 같이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관습에 의해 많은 불상들이 사찰에 모셔져있다. 조계종은 종헌에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한다고 하면서도 ‘다만, 종전부터 석가모니불 이외의 불상을 모신 사찰에 있어서는 그 관례에 종(從)한다.’고 하여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소태산은 석가모니불에게 연원을 대고 있다. 그렇지만 원불교의 본존은 일원상이다. 소태산은 이 일원상을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대종경 교의품 3장)”이라고 한다. 불타를 형체와 심체로 구분하고 있으며, 일원상은 심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일원상은 이미 9세기 무렵 중국 선종의 한 분파인 위앙종에서 깨달음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소태산은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일원상을 우주의 진리를 인격화한 법신불(Dharma-kaya Buddha)이라고 하였다. 정산은 원기33년(1948) 교명 전환과 함께 제정한 ‘원불교교헌’에서 “본교는 법신불 일원상을 본존으로 한다. 일원은 사은의 본원이요, 법·보·화(法報化) 삼위의 대상이며, 서가모니불과 소태산 대종사의 정전 심인이심을 신봉하여 진리로써 신봉한다.(정산종사법어 경륜편 5장)”고 하여 대승불교에서 발전한 보신불(Sambhoga-kaya Buddha), 화신불(Nirmana-kaya Buddha)을 합친 삼신불의 총체로 보았다.
결국 원불교는 불보를 새롭게 창조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제까지 어떤 전통 불교종단도 일원상을 불보로 숭앙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산은 이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는 근대 과학의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한 것으로 불상에 대한 전통 불교의 기복(祈福)적인 신앙형태를 혁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에 이미 한용운(韓龍雲, 1879-1944)과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불교개혁의 일환으로 사찰의 수많은 불상을 서가모니불 1불로 통폐합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은 불타의 마음에 근원하여 우주의 근원이자 제불조사의 깨달음의 상징인 법신불 일원상을 원불교의 본존으로 확립하였다. 이러한 본존의 형이상학적인 진리관에 근거하여 사은사요, 삼학팔조,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 등 교의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불교로 일신한 원불교의 신앙적 합리성이 현대인의 불안의 근원을 완전하게 해결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는 없다. 소태산은 “불상이 아니면 신심이 나지 않는 사람은 불상을 모신 곳에서 제도를 받아도 또한 좋을 것(대종경 교의품 10장)”이라고 하여 전통을 인정하고 있다.
대승불교가 수많은 불상을 역사 속에서 창조해 낸 것은 민중의 신앙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예를 들어,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은 인간의 한계상황인 죽음의 불안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처럼 불상 하나하나의 역사를 추적하자면 수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역사는 시기상응(時機相應)의 역사인 것이다.
원불교는 이처럼 민중의 신앙적 열망에 응해온 불교의 역사적 경험의 의미를 어떻게 자기화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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