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교화활성화 방안모색 -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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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교화활성화 방안모색 - Ⅱ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1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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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별기획 / 김준안 교무(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11월 4일, 총부 법은관에서 열린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과 원불교정책연구소 공동주최의 학술대회 ‘원불교 100년을 준비하다’에서 발표된 김준안 교무의 논문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호에 이어)



3. 교화단 교화 미정착(未定着)현행 원불교교헌에는 원불교의 ‘교화와 통치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10인 일단의 교화단을 조직’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교헌의 이 내용은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경륜을 잇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10인 일단의 단 조직 방법을 제정한 후 “교화단법이 교화를 위한 매우 빠르고 간이(簡易)한 조직임을 밝히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의 재세 28년간을 돌아보면, 영산 시대(원기 원년인 1916년∼1919년)에 이미 최초의 교화단을 조직하여 교단 창립의 경제적 정신적 기초가 되는 방언공사와 법인성사 등을 이루었으며, 변산 시대(1920년∼1924년)에는 모든 교법을 초안하고 교화단을 통하여 그 참된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이후 소태산은 불법연구회 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교화단의 실현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2대 종법사에 오른 정산 송규 종사는 원기39(1954)년 4월 “수위단회의 위신과 직능을 더욱 강화하여 교단 통치의 핵심체를 삼으며 각 교당에서는 교화단 조직을 강화하여 이로써 공부 사업 촉진의 기관을 삼는다면 사반공배의 좋은 결과를 얻게 되리라(『정산종사법어』,경륜편 10장)”하여 소태산의 이단치교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뒤를 이어 종법사에 오른 대산 김대거 종사도 원기47(1962)년 2월 취임사 중에 이미 이단치교와 법치교단을 공약하였으며, 대종사의 교화 이념을 담은 교화단 조직으로 교단을 운영해 갈 것을 천명하였다. 이처럼 교화단 교화는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역대 종법사의 핵심 경륜이었다.


그러나 교단 전체적으로 볼 때, 교화단 교화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총 493개 교당 가운데 일반, 청년, 학생, 어린이 교화단회를 다 포함하여 교화단회를 하지 않는 교당이 42개(8.4%), 1년에 1∼2번 정도 교화단회를 운영하는 교당이 46개(9.4%), 1년에 3∼5회 정도 교화단회를 운영하는 교당이 50개(10.2%), 1년에 6∼9회 정도 교화단회를 운영하는 교당이 66개(13.4%), 1년에 10회 이상 교화단회를 운영하는 교당이 289개(58.7%)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 달에 1회 이상 교화단회를 운영하는 교당이 60%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단장단을 구성하여 ‘단장단 단회’를 운영하고 있는 교당 수를 파악해본 결과, 총 493개 교당 가운데 단장단이 구성되지 않은 교당이 141개(28.5%), 단장단이 구성은 되어 있으나 단회를 실행하지 않는 교당이 96개(19.6%), 단장단이 구성되어 있고 단회를 부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교당이 91개(18.5%), 단장단이 구성되어 있고 단회를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교당은 165개(33.4%)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보면, 교화단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교당은 33%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논자는 소태산 대종사 당시부터 시도되었던 교화단 교화가 원불교 역사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이르러서도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교화 활성화의 장애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4. 교화 정책의 단절


‘교화’란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에 근거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개인적으로는 원만한 인격을 이루게 하고, 사회적으로는 상생과 평등사회를 이루어 모든 인류가 잘사는 낙원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화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정원에서는 교화 정책을 수립하고, 교화 현장과의 협조 체제 속에서 교화 정책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야말로 교화 정책에 따라 중앙총부와 교화 현장의 교화 활동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체로 교정이 바뀌는 3년마다 교화 정책이 바뀜에 따라 구성원들의 교화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짐으로써 교화 정책은 있지만 실제로는 교화 정책이 교화 활성화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어떤 정책을 수행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크고 작은 난관들이 있고, 그 난관들을 극복해야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구성원들은 정책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어도 전력투구를 않는 경우가 많다.


교정(敎政)이 바뀔 때마다 교화 정책이 상당히 바뀌었다. 물론 3년 내에 마무리 되는 정책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면, ‘미래 교화를 위한 교화구조개선’정책은 3년 내에 완료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교정에서는 중점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92-94 교정에서는 ‘미래 교화를 위한 교화구조개선’을 염두에 두고 3년에 걸쳐 ‘교당운영표준화 점검표’를 만들어 전국 503개 교당 중 494개 교당을 대상으로 교당운영표준화 점검을 실시하고, A4용지 539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래 교화를 위한 교화구조개선’정책이 다음 교정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함에 따라 그 활용도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사례 한 가지를 더 들면, 군 교화 정책을 들 수 있다. 89-91 교정 중점정책에는‘군 교화 추진’이 들어있다. 따라서 군종 승인을 위해 교단적인 역량을 쏟아 부은 결과, 원기91(2006)년 3월 24일에 원불교 군종장교 편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3년간은 그 여세를 몰아 군 교화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95-97 교정에서는 군 교화 활성화를 위해 이전 교정에서는 교화훈련부장이 겸직하던 군종 교구장을 따로 발령 내고 군종 교무도 추가 발령을 냈으나 군 교화가 교정원의 정책적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결과 입교자 수가 감소하는 등 군 교화가 주춤하고 있는 형국이다.


원기91(2006)년부터 원기96(2011)년까지의 군종 교구 입교자 수를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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