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공동체 ‘마을’을걷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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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 공동체 ‘마을’을걷다 -Ⅱ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7.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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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창간 20년 특별기획 ㅣ 박대성 교무(본지 편집장)





# 대성당의 독경소리


입정교성회는 1938년‘니와노 닛쿄’에 의해 창시된 일본의 불교 교단이다.‘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으며 일본 국내와 해외에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단체이다. 교리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이나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지향하는 것,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면에서는 우리 원불교와도 유사한 모습을 갖고 있는 교단이다.


일본은 불교와 신도(神道)가 전통 종교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신종교의 경우에도 불교계 신종교와 신도계 신종교로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인들의 신앙습관이“탄생은 신사(神社)에서 결혼은 교회에서 장례는 절에서”라는 정서로 하나의 종교만 고집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모습의 신종교들 또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우리에게 흔히‘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는 주문으로 유명한‘창가학회(SGI)’가 불교계 신종교라면‘박자목(拍子木)’을 두드리며 포교활동을 벌이는‘천리교(天理敎)’는 신도계 신종교로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도쿄의 입정교성회 총본부‘대성당(大聖堂)’에는 높이 5m의 석가모니불 입상을 본존으로 안치하고 있다.(사진1) 흔히 볼 수 있는 좌선하는 모습의 불상이 아니라 서있는 모습으로 모시는 이유는 부처님이 우리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대성당은 일본 전통의 건축 양식을 사용하지 않고 세계 각국의 종교 건축물을 종합하여 지었다고 한다. 스테인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이 이채로운 그곳에서 아침 6시가 되면 인근에 거주하는 신도들이 모여 아침 독경을 시작한다.


출가성직자 없이 법당 출입구에서 밝은 웃음으로 낯선 방문객을 맞아주며 건강하게 교단을 운영하는 입정교성회 재가신도들의 아침 독경 모습에서 교단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 통한(痛恨)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일본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를 전쟁의 참상으로 몰아넣은 당연한‘과보’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소위 피해자‘코스프레’로 자신들이 오히려 전쟁의 고통을 당한 것이라며 억울함 나타내는데 역이용 되기도 한다.


“죽어가는 이들을 그려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원폭의 참화와 전쟁의 무지함 고발할 수 없다”고 외친 화가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토시 부부가 일생을 그려온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는‘마루키 미술관(사진 2)’, 당시의 참상을 무겁고 역동적인 수묵화와 날카롭고 강렬한 채색화로 그려내어 전시하고 있다. 수많은 그림들은 참상을 다룬 어떤 사진보다 더욱 아리게 발길을 붙잡는다.



이들은 단지 자신들의 상처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시체마저 차별받아 원폭으로 죽어가도 그대로 방치되어 썩어가던 조선인들의 비참한 모습과 이에 대한 용서를 비는 내용을 그대로 그림에 담아냈으며, 일제가 저지른 남경 대학살의 참상을 그려 미국 등을 순회전시 하며 전쟁의 죄업을 참회하기도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제 개발시절 무분별하게 하천으로 유입된 수은의 의한 중독 질환으로 알려진‘미나마타병’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그림들도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더불어 미술관 앞마당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억울하게 학살된 재일조선인들의 한을 위로하는‘통한(痛恨)의 비(碑)’(사진 3)와 작은 사당이 새워져 있었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루키 부부의 노력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심고를 올리고 돌아서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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