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화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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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화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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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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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미 졸업생 " 경주 화랑고 2회 졸업생
저는 넘쳐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서 튀는 스타일도 아니고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학생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안학교를 나왔다고 하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은 그전과 달라집니다.
이 아이 뭔가 있다, 우리에게 숨기는 그 뭔가가 있다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
그렇지만 저는 어딜 봐도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범생이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대안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꼭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대안학교를 갔어? 너 문제아였어?”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참 싫었습니다. 꼭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갔다는 듯한 눈빛을 보이는 사람들...왜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대안학교를 갔던 것은 제 의지대로 선택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 때 인문계 또는 실업계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의지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이미 갖춰진 상황 속에서 짜여진 각본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야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그 각본에서 벗어나서 내게 주어진 선택권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길이나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은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안학교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제 주위의 어느 누구도 환영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우호적이던 친구들마저도 시간이 흐를수록 저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고집이었을까요. 그렇게도 완강하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우기고 우겨서 결국 저는 화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3월 1일 아침, 커다란 가방과 이불 보따리를 트렁크에 싣고 경주로 향하였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서 생활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저는 그저 합격의 기쁨에 들떠서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기숙사로 짐을 옮기는 동안 3년과 나와 함께 할 친구들의 모습을 힐끗힐끗 살펴보았습니다.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애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여자 중학교를 나온 저로써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학교생활을 잘 해내 갈 수 있을지 그때까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걔가 무슨 생각으로 담배를 피우든지 간에 담배 피는 친구를 경계했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범생이의 전형적인 대응자세였겠죠. 하지만 입학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나의 편견은 잘못된 것이었단 걸 깨달았습니다. 담배를 피는 친구들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고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기호식품을 즐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빨리 끊거나 줄여야 하는 과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24시간 봐야하는 친구들이어서 사소한 문제로 다투기도 했지만 그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문제로 오해들을 풀어나가면서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1학년 때는 그저 학교생활의 모든 것들이 재미났습니다. 이제껏 제가 경험하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두려움이나 낯설기보다는 호기심이 앞질렀습니다.
특히 생전 처음으로 지리산을 올랐던 기억은 여전히 또렷이 떠오릅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교생이 지리산 등반을 하는데 1학년이었던 저는 한번도 등반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우리 집 앞산을 오르는 게 다였습니다. 과연 제가 정상까지 아무 탈 없이 오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출발 전날 밤새 뒤척이며 걱정을 했었습니다. 역시나 지리산 등반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다지 건강체질도 아니었던 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뒤쳐졌지만 그때마다 항상 제 곁에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해주며 힘을 북돋아주었습니다. 여러 차례 힘겨운 고비를 넘겼지만 덕분에 저는 제 두발로 천왕봉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전교생 누구보다도 가벼운 배낭이었지만 손목에 찬 시계조차도 풀어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든 첫 등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등반을 통해서 저는 큰 힘을 얻었습니다. 항상 몸이 좋지 않아서 포기해야 하는 일이 많았던 저이기에 지리산 등반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 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칠 때면 그때의 첫 지리산 등반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독이곤 합니다.
지리산 등반이 육체적 승리의 의미를 지녔다면 소록도 봉사활동은 제 삶에 있어서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록도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한센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계시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2학년 겨울 무렵 소록도를 간다기에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자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소록도 봉사활동 사전 교육을 받는 동안 걱정과 두려움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곳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아니라 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행여나 짧은 생각에 철없는 행동을 해서 그분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소록도로 향하는 내내 웃지 못할 정도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기우였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단지 한센병을 앓고 계셔서 신체적 활동에 조금 지장을 받으시는 것뿐이었습니다. 소록도 봉사활동은 저의 편견을 또 한번 날려준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소록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단순히 나와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에 대한 편견만을 지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뵙던 한센병을 앓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얼마나 의욕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렇게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부득부득 우겨서 온 화랑고등학교에서 저는 스스로의 가치를 얼마나 높였는지, 지금 저의 생활은 얼마나 알차게 보내고 있는지, 앞으로 제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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