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 어려운 경계속에서 신앙 꽃 피운 ... 이은영 남서울교당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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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어려운 경계속에서 신앙 꽃 피운 ... 이은영 남서울교당 교도
  • 서원정
  • 승인 2005.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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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장사 안한다고 굶겠나"


#노점상을 하면서도 부끄러움 몰라 “내가 이 법을 안 만났으면 지금 어디서 헤매고 있었을까?”싶다는 이은영 할머니(사진, 74세)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이 원불교인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가짐”이라고 내세웠다. 31년 전 사촌오빠(故이덕천 교도)의 권유로 입교한 할머니는 “내가 평소 존경하던 오빠라 그랬는지 원불교는 진리를 믿는 우리나라 종교라는 설명이 어쩐지 와 닿더라”면서 “교당에 나오면 무조건 좋았다”고. 완도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6남매를 키우면서 왜 힘든 일이 없었을까? 먹고 살기 힘들어 서울로 상경, 노량진에서 28년째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울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원상 앞에서 울면서 속내를 털어놓고, 힘든 일이 닥치면 법신불께 난관을 헤쳐 갈 힘을 달라고 기도드리며 살아왔다”면서 “하루 종일 단속반을 피해야 하는 노점상을 하면서도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고, 자식들 먹이고 입히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다”며 어려웠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꿈에 나타난 일원상 이 할머니는 어느 날 꿈 속에 눈부신 광택이 나는 일원상이 집안에 가득 들어찬 것을 보았다. “아, 내가 일요일 장사를 안 한다고 굶기야 하겠나?"싶어 크게 깨달은 그녀는 이후로 일요일엔 장사를 안 하고 교당에만 전념했다. “명절이라 집에 자식들이 와 있어도 교당 법회에 갔다 온다"는 그녀는 몇년 전 막내딸이 보고 싶어 일본에 갔을 때도 오사카교당을 찾아 법회를 봤다. ‘된장공장 공장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몇년 전까지 남서울교당에서 보은장날 파는 된장을 담그는데 앞장섰던 할머니는 “요샌 관절염과 허리디스크로 교당 부엌에도 못 들어가지만 그전엔 교당일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가서 일했고 일하고 오면 오히려 더 가뿐 했었다"면서 “그 땐 교당 일하고 몸살 난다는 말 을 이해하지 못했었다"며 웃었다. “내 몸 건강할 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등촌 복지관이며 번동 복지관에 가서 봉사를 했고, 교당 식구들 먹이려고 50인분이 넘는 곰국을 끓여 나르곤 했다”는 할머니는 “자식을 섬기고 남편을 섬기며 묵묵히 내 할일만 하다 보니 남편(신형기 교도)도 작년부터 교당에 열심히 다니게 됐다”고. #너는 춥다고 밥 안 먹냐? 새벽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들은 스스로 교당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큰아들 부부는 부산 청학교당에 다니고 큰 딸(신기명 교도)은 중화교당에 다닌다”면서 “막내딸은 일본에서 교당을 다니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막내아들은 주말에 특히 바쁜 직업이라 교당에 자주 나오진 못하지만 일요일이면 꼭 우리 부부를 교당에 데려다주고 출근 한다”고 흐뭇해했다. “교당 나가는 낙으로 산다”는 할머니는 “너무 추울 때는 교당 가는 길이 미끄러우니 가지 말라”고 말리는 딸에게 “너는 춥다고 밥 안 먹고 사냐? 법을 먹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추워도 교당에 가야 한다”며 길을 나섰다가 빙판길에 두 번이나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일도 있다고. 할머니는 “하면 할수록 원불교 공부가 어렵더라”면서 “남편도 성격이 급했는데 교당 다니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감사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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