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 서울 성정지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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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 서울 성정지를 돌아보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8.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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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불교 100년 앞두고 기획연재로 교단관심 이끌 계획



올 한해도 벌써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원불교 100년도 어느새 불과 4년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원기 100년에는 정말 우리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가끔 지난 96년 역사를 되짚어보며 묻는 질문이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 또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희망찬 미래는 당연히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란 말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서울교화가 시작된 것도 어느새 90년이다. 소태산 대종사 처음 상경한 것이 원기 9년이니 정확히 금년은 서울교화 88년이 되는 해다. 한울안신문이 다시한번 원불교 100년을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 서울 성적지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수도 서울은 원불교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성적지로 꼽히나 영산이나 변산, 익산에 비해 아직도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아오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기록에 따르면 소태산 대종사는 익산에 중앙총부가 건설되던 해인 원기 9년 초부터 열반을 하던 해인 원기 28년까지 20여년간 1백 수십여 차례에 걸쳐 서울을 방문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원기 9년 중앙총부 건설 이후 소태산 대종사가 상시로 주재를 하며 교화를 펼친 곳이 익산이라면 원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내왕을 하며 활발하게 교화활동을 펼친 곳은 당연히 서울과 부산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와 부산은 원불교사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에 비춰 볼 때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한 측면이 많다. 만약 원불교 중앙총부가 익산에 있지 않고 서울에 있었다면 부산에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원불교 100년 성업을 앞두고 소태산 대종사 서울 성적지와 서울교화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는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서울 성적지를 돌아보는 기획기사는 이혜화 교도(전 서울문인회장)와 서문성 교무(교화훈련부 순교감)가 오래 전 본지를 통해 연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서울 성적지들 대한 교단적 관심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이번 기획연재를 싣는다고 해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서울 성적지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라도 좀더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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