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남교당 양타원 송경심 원정사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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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교당 양타원 송경심 원정사 열반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9.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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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생일신 무루공덕 나툰 산 공부인



사회적인 덕망과 향기로운 인품으로 초기 교단 발전에 두루 공적을 나투셨던 원남교당 양타원 송경심 원정사가 지난 8월 30일 94세를 일기로 거연히 열반의 길에 들었다. 1917년 8월 8일 부친 송원국 중희사와 모친 김지현 중희사의 8남매 중 셋째딸로 출생한 송경심 원정사는 부산교당에서 항타원 이경순 종사로부터 인과보응에 대한 법문을 받들고 발심을 한 뒤 원기36년 6월 21일 숙모인 학타원 나용선 교도를 연원으로 원불교에 입교해 일평생 성불제중 서원일념으로 정진적공에 힘써 온 산 공부인이었다.


어린시절부터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에 명석하면서도 너그러운 성품까지 두루 갖추었다는 칭송을 받아온 송경심 원정사는 도지사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명문 경남여고에 진학을 해 주위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고를 졸업한 뒤에는 부군 백산 정도진 대호법과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가운데, 오롯한 신성과 공부심으로 교단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없이 합력하는 모습을 보여 교도들의 귀감이 되었다.


송경심 원정사는 일평생 명문가의 맏며느리로, 정치인의 아내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도 법을 듣고 연마하는 공부를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부산진교당을 세우기 위해 출장법회를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들을 교당으로 인도해 교화에 힘썼으며, 종로교당 주무, 원남교당 부회장과 고문 등을 역임하면서도 교당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해외교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미국·러시아·일본 등지에 교당이 세워질 때마다 소리없이 마음을 합해 큰 공덕을 쌓았다.


송경심 원정사는 이러한 공덕으로 원기 46년 ‘양타원’이란 법호를 수증했으며 원기 61년에는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되었다. 또 원기 62년에는 ‘대호법’을, 원기 76년 소태산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를 맞아서는 ‘종사’의 법훈을 서훈했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자녀들의 극진한 효성과 시봉을 받으며 편안한 수양생활을 하다가 지난 8월 30일 94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니 법랍은 61년이요 공부성적은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7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초종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진다.


경산 종법사는 원정사의 열반을 당해 “사생일신을 생활표준으로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복잡하고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공부심으로 정진적공하며, 교단불사에 말없이 동참해 주셨던 어른이셨다”며 “신성심대진주인 무량불공종훈탑 노의해탈시적멸 무운천월광독조(信誠深大眞主人 無量佛供宗勳塔 老衣解脫示寂滅 無雲天月光獨照)”라는 게로 영로를 위로했다. 신성이 깊고 커서 큰 주인이더니 한량없는 불공으로 종훈탑을 쌓았네. 낡은 옷 벗어 버리고 적멸락을 나투니 구름 없는 하늘에 달빛 홀로 비추도다는 뜻이다.


송경심 원정사의 장지는 울산 선영으로 49재는 오는 10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원남교당 대각전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초재부터 종재까지 모든 장례 절차는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원남교당 대각전에서 진행된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아들 정재문 전 국회의원 내외(원남교당)와 딸 정종인 내외(사위 엄영석 서울디지털대학교 이사장, 강남교당), 그리고 손자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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