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위한 꽃등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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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위한 꽃등을 밝히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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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 경산 종법사 '육바라밀' 수행 정진 당부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중앙총부를 비롯한 전국 각 교당 기관에서 부처님 오심을 경축하는 각종 행사들이 펼쳐졌다. 지난 5월 28일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열린 석존성탄절 기념식에서 경산 종법사는 “부처님이 꿈꾸셨던 세상은 온 세상이 불은화 되고 선법화 된 평등 평화의 세상일 것”이라며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로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을 주문했다. 전국 각 교당 기관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사은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가정의 안녕과 국가·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연등을 달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렸다. 다음은 부처님 오신 날 기념 경산 종법사 경축 법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경산종법사 부처님오신날


경축법문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축복하며 염원하셨던 그 꿈을 잘 실현해 나가는 불제자가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간절히 염원하셨던 그 꿈은 과연 어떤 꿈이었을까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부처님의 그 꿈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를 부처로 만드는 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불법으로 정치를 하고 불법으로 경제를 하고 불법으로 생활을 하는 세상, 모든 것이 불은화 되고 모든 것이 선법화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진정한 꿈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4억 불제자들은 더욱 마음을 굳게 다지고 마음공부에 힘써서 부처님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심통제자들이 되시기를 간곡하게 축원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재세기간 동안 많은 법문을 남기셨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대승적 법문이 바로 육바라밀 법문입니다.


탐진치로 물든 사바세계의 괴로운 언덕에서 부처님께서 사는 평화롭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부처님 세계로 가는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 여섯가지 방법이 바로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인데, 오늘은 이 육바라밀 법문을 부연해 볼까 합니다.


육바라밀 가운데 첫 번째는 보시바라밀입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현실생활에서 나투기 위해서는 보시를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생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이 곧 부처의 삶이기 때문에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보시를 하기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 걸인을 만나면 동전을 던져주고 싶은데 그것을 헤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만원을 보시하겠다고 약속하고 오천 원을 보시하기도 하고 아예 외상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모두가 우리들의 이기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이기심을 극복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가 없고 부처가 될 수도 없습니다. 이 이기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풀고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삶이 없고 베풀고 사는 삶처럼 자유로운 삶이 없습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주려고 준비하고 있는가를 늘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물질적 보시도 중요하지만 부처님 말씀을 널리 전하는 것도 보시입니다. 경전을 선물하는 것도 좋은 보시이지만 그 경전을 잘 정리해서 세상에 널리 전해주는 것도 큰 보시입니다. 수심결이 없고 반야심경이 없고 금강경이 없고 교전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아울러 정신적인 보시도 큰 보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만나면 믿음이 생기고 만나면 기분이 좋고 만나면 희망이 생기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정신, 육신, 물질로 늘 보시를 할 줄 알아야 부처님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계바라밀입니다. 한마디로 계문을 잘 지키라는 말씀인데요, 계문이 나로 하여금 악도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요 방파제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계문이라는 방파제를 막아 놓으면 오욕의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오더라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잘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은 나무는 삐뚤빼뚤 엉망진창으로 자라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계문을 지키는 것은 바로 나무에 가지치기를 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주의 조행을 잘 지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심계를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위에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는 정신수양이 제일이라며 사리연구나 작업취사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을 보고 계문을 어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공부인들은 이러한 자기의 단점들을 심계로 정하고 고쳐나가는 데 힘써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삼세를 놓고 볼 때 누구에게나 전생에 모르고 습관을 들였던 습성이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습성들을 지금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다음 생도 그 다음생도 그대로 남아 성불을 이루는데 방해가 됩니다. 우리 공부인들은 심계를 가지고 이러한 잘못된 습성들을 고쳐나가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훌륭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인욕바라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존심을 상하는 것을 못 참아하고, 자기 물건이 훼손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 당하면 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내가 왜 화를 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서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자님께서는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남을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군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 못하는 것이 걱정이지 다른 사람이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태도야 말로 우리가 인욕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심법입니다.


두 번까지는 몰라도 세 번까지는 못 참겠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인욕공부는 참았다는 상마저도 없어야 합니다. 나이가 드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수행인들에게 말을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고 마음이 묘하게 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내가 얼마나 관대하고 내가 얼마나 참을 줄 아는가를 대조해 보곤 합니다. 어쨌든 인욕바라밀은 나의 인격을 튼실히 하고 나의 인격을 광대하게 확대해 나가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 화가 난다고 하는 것은 나의 마음 가운데 애착이 남아있거나 뭔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서 반드시 그 원인을 제거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번째는 정진바라밀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인격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말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한길로 오롯하게 정진을 해 나가야 합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얼마나 눈길을 빼앗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때문에 정진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야 하겠다는 굳은 신념과 오롯하게 정진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노여움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십년을 공부하고 내가 삼십년을 공부했는데 이 정도밖에 이루지 못했느냐 하는 불같은 분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성불을 하지 못한 것, 지금까지 정진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화를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반드시 이것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의문을 갖지 않으면 그 누구도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항상 똑같은 방식과 방법으로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보다 더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왜 더 이상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해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런 창의력도 갖지 않고 그럭저럭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개 신념도 부족하고 분노도 없고 의문도 갖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분의성으로 정진적공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는 선정바라밀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일기법을 보면 하루에 네 번씩 도심이 있는가 없는가를 반드시 대조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침 좌선이 끝나면 도심을 챙겨보고 저녁 염불이 끝나면 또 도심을 챙겨보고 오전에도 한번 오후에도 한번 이렇게 도심을 챙겨서 언제 어디서든지 도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스님께서 “나는 부처님을 안고 자고 부처님과 함께 깨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뜻은 서가모니 부처님을 안고 자고 서가모니 부처남과 함께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살아가는데 있어 진공묘유한 도심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내용의 말씀일 것입니다.


선을 하지 아니하고 진정한 극락을 찾을 수 없고, 선을 하지 않고 지혜가 있을 수 없고, 선을 하지 아니하고 자비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선을 해야 거기서 밝은 지혜가 나오고, 선을 해야 거기서 너른 자비가 나옵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체질에 맞게 호흡을 하면 누구나 식망현진 수승화강을 이룰 수가 있음을 알아 선정을 쉬지 않아야 부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지혜바라밀입니다. 지혜란 말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란 누구나 갖추고 있는 근본지, 반야지를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갖춰져 있는 이 근본지 반야지를 아는 것을 우리는 견성이라 하고 이 반야지를 활용해 사물에 숨어있는 이치를 아는 것을 우리는 의두라 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반야지를 모아 알음알이를 터득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반야지를 두루 비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대종사님께서는 묘유로 용을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이 반야지가 삼독심에 가려 어두워진 상태에서 일을 처리하다보니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이 반야지가 가리워지지 않도록 모아쓰고 비춰쓸 줄 알아 부처님의 지혜를 얻도록 힘써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께서 내놓으신 이 여섯가지 마음공부로 반야용선을 만들어서 부처님이 꿈꾸셨던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되는 기연을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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