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산 영전靈前에
상태바
과산 영전靈前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6.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추도사 / 김상근 목사


과산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아, 과산이 갔구나. 뭐가 그리도 급했던가. 과산답지 않습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섭섭함을 안기지 않던 당신이 이렇게 훌훌 내 곁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과산답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서로 죽이는 이 세상 문화속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일등, 일등만을 가치로 삼고 뺏고 소유하는 것을 승리라 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눈을 뜨면 핏발 세워 서로 죽이기를 다투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이 만큼 산 것도 퍽 용합니다. 서둘러 갈 수밖에 없었으리.


그러나 당신을 보낸 우리는 허망하기만 합니다. 오래토록 당신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한 세상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맑아지곤 했습니다. 오래토록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기도하는 현수막을 펼쳐 들고 나란히 거리를 행진하던 날 나는 훨씬 진실해 졌었습니다. 아무런 뽐냄 없이, 아무런 드러냄 없이 당신은 정의를 향했고 평화를 쌓았습니다. 당신은 정말 그랬습니다.


나는 기독교 목사지만 원불교 교무인 당신을 벗하게 된 것을 매우 큰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예수의 냄새를 물씬 맡곤 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장 20절)”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묵상할 때 떠오르는 사람은 목사가 아니라 당신이었습니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복음 6장 1절).”예수의 이 가르침을 명상할 때도 목사가 아닌 당신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특별하게 꾸며 성직자입네 하지 않았고, 어디 가서 높임을 받고자 윗자리,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사받기 와 자기를 높여주기를 즐기지도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 5~7절). 나는 당신에게서 예수의 냄새를 흠뻑 맡곤 했습니다.


기독교 성서는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친절한 것이라고, 시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뽐내지 않는 것이라고, 교만하지 않는 것이라고, 무례하지 않는 것이라고,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내지 않는 것이라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라고. 그리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고. 꼭 당신을 두고 한 말씀만 같습니다. 당신은 정녕코 그랬습니다. 당신은 평생 그렇게 살았지 않습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넓은 품에 안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은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 수행의 길을 걸으셨고 열반하셨습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품이라 해도 웃는 듯 마는 듯 받아드리실 것 같습니다. 목사가 아니니 아무리 예수 냄새 물씬난다 하더라도 너를 모른다하는 속 좁아빠진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성훈 사모님께서는 지금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고 슬픔을 거두시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그리하셨던 대로 꿋꿋하게 사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무들께서도 당신이 닦아 놓은 종단 간 연대의 저 높은 뜻을 이어갈 것입니다. 연대해온 다른 교단의 성직자 모두, 당신이 비어놓은 자리를 서둘러 채워갈 것입니다. 과산이여, 하나님의 품에서 고이 쉬소서.


2015년 6월 21일 삼가 교제 김상근이 과산 영전에 바칩니다.



* 김상근 목사
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
현)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