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언론의 초석을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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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언론의 초석을 다져’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11.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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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현산 이종원 원정사 열반



월간 원광과 원불교 신문사를 통해 교단 언론의 초석을 다졌던 현산 이종원 원정사가 노환으로 10월27일(화) 열반했다. 1930년 10월 6일 전북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에서 부친 이동세 교정과 모친 송타원 박정지행 정사의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원기27년 조송광 선진의 연원으로 원평교당에서 입교, 원기38년 김홍철 선진의 추천과 이완철 선진의 보증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했으며, 원기49년에 서원승인을 받았다. 원기49년 원광사 임원을 시작으로 원기58년 원광사 편집 주간, 원기64년 신보사 주필 겸직, 원기67년 중앙문화원 부원장, 원기73년 원불교신보사 사장, 원기77년 월간 원광사 사장, 원기77년 12월 중앙문화원 원장, 원기79년 일본교구 교구장겸 관동교당 교감, 원기83년 원광사 고문으로 봉직했다.


원정사는 원기62년 나타날 현“현산(現山)”이란 법호를 받고, 원기70년‘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했으며, 원기91년‘정식 출가위’에 승급하여‘종사’법훈을 수훈했다.


현산 원정사는 원광을 편집할 때 정산종사의 친감(親鑑)을 받들었고, 원불교신문사 주필을 맡고 있을 때 바른 법과 큰 원칙을 스스로의 계명으로 삼으셨으며, 기자들에게는 “교단의 역사를 쓴다”는 지중한 사명감으로 임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일본교화 시절에는 어렵고 곤고한 삶 속에서도 항상 함께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큰 원력을 뿌리내리도록 힘쓰다가 원기84년 퇴임, 더욱 더 구도의 열정과 구원의 열성으로 정진 적공하다가 노환으로 열반에 들었다. 세수는 86세, 법랍은 62년 7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 3호, 원성적정특등으로 원불교 교단장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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