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자리

3 감각감상 / 정형은 , (전곡교당)

2012-03-09     한울안신문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이들을 낳고 언제부터인지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는 일이 없어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도중에 여러 번 깨고 잠이 부족해서라는 핑계가 있었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잠을 설치는 일도 없는데 남편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 밥과 반찬은 미리 다 준비해 두어 차려 먹기만 하면 되지만 혼자 차려 먹고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니 축 처진 어깨가 떠오른다.


일어나면 출근하고 없는 남편의 빈자리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좀처럼 고쳐지진 않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딸이 조금만 뒤척이거나 잠꼬대를 하는 등 딸의 움직임엔 본능적으로 즉시 일어나던 내가 남편 밥 차려 줄 시간엔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심한 아내, 게으른 아내가 되어 조금씩 아내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조금만 내 뜻과 맞지 않으면 남편의 행동과 말에 불평 불만이 늘어가고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20년이 지나면 우린 어떤 부부로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성가 89장 ‘괴롭다 즐겁다 하는 이들아’가 내 머릿속에 맴돈다.(괴롭다 즐겁다 하는 이들아 고락의 원인들을 생각해 보라, 우연히 받는 고락 어디 있으랴 알고 보면 지어 받는 고락이니라.)


고락의 원인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지어 받는 고락이라고 했는데 이 모든 불평 불만을 내가 지은 것인가. 나는 과연 남편에게 얼마나 잘 하고 있으면서 이런 불평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무엇 하나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편에 대해 불평 불만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 주자고 결심했다. 내가 직접 밥도 뜨고 찌개도 데우고 상을 차렸다. 다 차린 밥상에 나란히 앉아 함께 아침밥을 먹으니 신혼 기분이 살짝 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아닌 남편과 아내가 마주 앉아 아침을 먹고 남편 출근 배웅도 하니 아내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있다. 불평불만이 사라진 자리에 사랑과 행복이 봄기운과 함께 밀려드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