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법문] ‘하루 아침’의 참고거리

지름길 법문 19

2022-07-12     라도현
라도현<br>화정교당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경전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야 도가 있는 것으로 인증하여, 같은 진리를 말할지라도 옛 경전을 인거하여 말하면 그것은 미덥게 들으나, 쉬운 말로 직접 원리를 밝혀줌에 대하여는 오히려 가볍게 듣는 편이 많으니 이 어찌 답답한 생각이 아니리요. (중략) 그대들은 삼가 많고 번거한 옛 경전들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마땅히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부지런히 공부하여, 뛰어난 역량(力量)을 얻은 후에 저 옛 경전과 모든 학설은 참고로 한 번 가져다 보라. 그러하면, 그 때에는 십년의 독서보다 하루 아침의 참고가 더 나으리라.」 <대종경> 제3수행품 22장

간절한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입니다. 대도를 깨치려고 하면, 저 많은 옛 경전들을 읽느라 고생하지 말고, 우리의 간단하고 편리한 교법으로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역량을 얻은 후에 옛 경전과 모든 학설을 참고로 한 번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하면 그때는 “십년의 독서보다 하루 아침의 참고가 더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도 쉽다는 것입니다.

위 법문은 방편(方便)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과거 수많은 조사(祖師)들도 위와 같은 법문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본성을 깨치고 보면 천경만론(千經萬論)이 모두 부질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 청허(淸虛) 스님은, 어느 날 고개를 넘다가 대낮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대오(大悟)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髮白非心白 古人曾漏洩 今聽一聲鷄 丈夫能事畢. 忽得自家底 頭頭只此爾 萬千金寶藏 元是一空紙.

머리는 세도 마음은 세지 않는다고 / 옛사람이 일찍이 말하더니만 / 오늘 닭 우는 소리를 듣고서 / 장부가 해야 될 일을 마쳤네. / 홀연 내 집에 찾아들고 보니 / 모든 것이 다만 이것 뿐이로구나 / 소중히 아껴왔던 천만 경전들이 / 본시 한 장의 빈 종이였네.

자기의 본래 모습[自性]을 깨치고 보니,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수많은 경전이 그저 빈 종이와 같더라는 것입니다. 부처와 조사의 천만 법문들이 모두 자기의 성품 안에 다 들어있더라는 말입니다. 경전을 폄하(貶下)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갖춰져 있는 가없는 지혜, 자성의 지혜광명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至隋開皇十二年壬子歲, 有沙彌道信, 年始十四, 來禮師曰, 願和?慈悲乞與解脫法門. 師曰, 誰縛汝. 曰, 無人縛. 師曰, 何更求解脫乎. 信於言下大悟.

수나라 개황12년(서기 592, 임자년)에 도신(道信)이라는 사미(沙彌)가 있었다. 나이가 이제 열네 살이었는데, 삼조 승찬(僧璨)대사에게 와서 절하고 물었다. “화상이시여, 자비를 베푸시어 해탈하는 법문을 일러 주소서.” 대사가 물었다. “누가 너를 속박하였느냐?” 사미가 대답하였다. “아무도 속박한 사람이 없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 또 해탈을 구하느냐?” 도신이 그 말끝에 크게 깨쳤다. 《傳燈錄》

이로부터 천 사백 년 뒤에 어떤 이가 위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열리며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서산대사가 얻었던 것과 같은 경지를 얻었습니다. 부처님과 조사의 법문이 진실로 자기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처럼 천만경론이 ‘하루 아침’의 참고거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