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일상日常 과 성사聖事 

김대은 인천교당 교도   

2024-10-24     한울안신문

초기에 붓다는 제자들에게 한 곳에서 사흘 이상 머물지 말고, 밥은 얻어먹으며, 어떤 것도 소유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에 따라 사위성에 들어가 빈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 일곱 집에 들러 발우를 내밀었고, 얻은 것만 들고 처소로 돌아와 나누어 먹었다.
얻어온 음식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었다. 짖궂은 아이들이 집어 넣은 돌멩이나 풀, 나뭇잎 등 각종 이물질들을 비롯하여 손에서 떨어져 나간 나병 환자의 손가락도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뒤적거려 가리지 않고 전부 먹어야 하니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며 이로 인해 배탈과 식중독은 다반사고 위장 장애는 흔한 증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맞이하여 붓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의 징표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고 어떤 고충의 자취나 흔적도 드러나지 않았다. 
금강경 첫장에서 보이는 이런 식사 풍경에서는 자유롭고 평범하여 어떤 분열도 찾을 수 없고 식사 과정에서는 여유롭고 차분하여 어떤 갈등도 발견할 수 없다. 음식을 공양한 후 가사와 밥그릇을 거두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는 순간에도 붓다의 마음은 머무름 없이 한결같이 정갈하고 반듯했으며 일관되게 평온하고 느긋했다. 게다가 탁발 전에 온전한 음식으로 그릇을 채울 수 있을지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았고 다음 집에서는 무슨 음식을 줄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내일의 탁발을 계획하거나 고민하지도 않았다.       
편협함과 자기중심성으로 인하여 분명한 진실을 외면하고 분명한 사실을 간과하는 인간의 나르시스적 도취는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흔드는 가장 위험한 행태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유아기적 환상을 토대로 그 실상을 해석하고 자의적인 편집을 통해 그 실체에 접근한다. 그래서 삶에서 범사凡事는 멀어지고 왜곡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며 각색된 상황이 실체를 갈음한다. 인간세의 모든 불행과 병폐가 여기서 비롯된다. 편견에 사로잡히고 격정에 휘말리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기적 고착을 덜고, 정서적 장애를 극복하여 일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러면 마음이 흘러가도록 막아놓은 심리적 물꼬를 터 주어야 하며, 한 곳에 머물러 정체되지 않도록 틀어쥐고 있는 감정적 족쇄를 풀어 주어야 한다. 그 마음이 무상심이고 평상심이다. 주자도 지적했듯이 충동과 정념은 인간이 흔히 움켜쥐는 불가피한 감정이다. 하지만 이들 심정들은 몹시 난폭하고 사나워서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런 거친 마음에는 지속적인 성찰과 강력한 제어를 통한 적극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훌륭한 일을 했더라도 그 영광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돌리라는 예수의 말이나 이룬 공功을 자신 옆에 쌓아두지 말라는 노자의 가르침 역시 사용한 마음은 다시 놓아주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일상이 성사가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 공부에 전력하다가 예언력을 얻은 제자에게 이는 수행 도중에 반딧불 같이 나타나는 허령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이로 인해 큰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도에 떨어져 아수라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는 법 또한 공空하다고 한 금강경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고 평상심의 회복을 역설했던 혜능의 입장에서도 확인되는 소중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