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을 왜 해야 하나

2025-02-05     한울안신문

수도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이니라.

<대종경> 요훈품 2장

왜 굳이 ‘견성’이 필요하다고 할까. 견성을 하면 무엇이 유익하기에 견성을 중요시 하는 것일까. 견성을 해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해서 묻지 않았던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마음의 자유

대범, 선禪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性稟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인 바, 예로부터 큰 도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선을 닦지 아니한 일이 없나니라.

<정전> 무시선법 중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무엇을 하든 그 목적을 분명히 했다. 새로운 회상을 열면서도 ‘개교의 동기를 직접 기술하고 그 밖에 여러 교설에서도 늘 그 목적과 요지를 밝혔다. 내용과 방법 등도 순차적으로 기술하곤 했다. <무시선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선을 왜 하는 것이냐?’라고 묻고 거기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는 데서부터 가르침을 시작한다.

‘선禪’을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해서 ‘각자의 성품을 오득’해야 한다고 설한다. 그리고 ‘각자의 성품’을 설명하는 수식 문장을 그 앞에 덧붙였다. ‘원래의 분별 주착이 없는’이라고. 이어서 ‘예로부터 큰 도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선을 닦지 아니한 일이 없나니라’라고 유구한 수행의 역사를 간략히 언급해서 공부인의 발심을 진작한다. 그리고 ‘무시선’을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그 공덕은 무엇인지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는 공부, 견성을 위한 노력은 바로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견성을 위한 첫걸음부터 옆길로 샐 수 있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견성의 개념과 목적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엉뚱한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마음의 자유’라는 개념 역시 간단히 정리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일단은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견성’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고한 전제를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참회

대범, 참회라 하는 것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이며,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어오는 초문이라,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여 날로 선도를 행한즉 구업舊業은 날로 가까워지고 악도는 스스로 멀어지나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되 ‘전심작악前心作惡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후심기선後心起善은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함과 같나니라’하시었나니,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 마음이 멸함을 따라 반드시 없어질 것이며, 업은 본래 무명인지라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나니, 죄고에 신음하는 사람들이여! 어찌 이 문에 들지 아니하리요. <정전> 참회문 중에서

참회의 원리와 방법 그리고 결과까지 자세히 설명한 <정전> 참회문을 보면 견성을 해야 진정한 참회를 할 수 있고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참회’란 과거의 잘못된 마음을 깨달아서 뉘우치고 새로운 선한 마음으로,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일단 내가 나의 잘못을 알아차려야 한다. ‘견성’을 하지 않고는 자기 마음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힘들다. ‘견성’은 참회의 전제라고 할 수 있다. 견성을 하지 못하고 참회를 하려한들 그 기준을 찾기가 어렵고 혼란스럽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관념 등을 참회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통례이지만 과연 그것들이 진정한 참회의 기준으로 충분한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정확한 잣대와 먹줄을 가진 목수’처럼 자신의 가치 판단이 가능해야 참회도 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양심에 비춰서 자신의 잘못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의 잘못을 이야기해도 내가 자신의 마음 바탕까지 훑어보아서 잘못이 없다면 그들의 비난과 평가를 이겨내야 한다. 이런 온전한 판단의 근거가 바로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견성’공부에서 비롯된다. ‘자성의 혜광’이 온전히 빛나게 하려면 견성을 해야 하고 죄업을 짓지 말아서 구름이 해를 가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거울이 없는데 어떻게 얼굴을 비춰볼 것인가?

거울이 얼룩졌는데 내 얼굴의 얼룩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얼룩졌는 줄을 모르는데 어떻게 얼룩을 지울 수 있겠나?

‘성품’이 맑은 거울이라면 얼룩은 ‘마음이라고 할까?

거울을 보면서 얼굴만 보지 말고 거울도 보아야 한다.

거울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으니,

견성도 그럴 것이다.

천업, 생사 자유

또는, 공부인이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적적 성성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고 보면, 천업天業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서, 삼계 육도가 평등 일미요, 동정 역순이 무비삼매無非三昧라, 이러한 사람은 천만 죄고가 더운 물에 얼음 녹듯하여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가 이 도량이요, 진대지가 이 정토라 내외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罪相도 찾아볼 수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불조의 참회요, 대승의 참회라 이 지경에 이르러야 가히 죄업을 마쳤다 하리라. <정전> 참회문 중에서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자성불自性佛’을 깨치면, 즉 견성을 하면 ‘업력業力’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공’한 업력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과거의 삶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게 된다. 새로운 마음을 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게재된 '부처로 가는 길'은 <붓다 가이드>(2022, 도서출판 마음공부)에서 부분 발췌하고 다듬어 수록했습니다.

2월 7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