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정처
조용히 해야 일원상을 만나는 것이 마치 ‘양자 현상’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입정을 AI에게 물으면, 사맛디(Samādhi)의 음 변환인 삼매를 뜻하고 ‘sam’은 ‘함께, 완전히’, ‘ā’는 ‘방향, 집중’ 그리고 ‘dhi’는 ‘두다, 놓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도의 정신적 뿌리를 두고 있는 불교는 ‘고요히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중국, 한국, 일본에서 성행한 선 전통에서는 입정을 깨달음을 얻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명상 열풍은 특별히 깨달음보다는 마음 안정을 통해서 몸 건강을 추구한다.
그러나, 원불교에서는 사뭇 다르다. 원불교 교도가 늘 독경하는 ‘일원상 서원문’의 첫 구절에서 일원은 ‘입정처’라고 말할 뿐, 깨달음을 강조하지 않는 듯 보인다. 입정을 통해서 내 안에 갈무리되어 있는 일원(진리 혹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원불교를 아는 첫 관문이고 이번 컬럼의 주제이다.
한울안 신문 기획연재인 ‘AI 양자세대를 위한 원불교’를 준비하면서 AI와 새로운 만남을 가졌다. 보통 글을 쓸 때 필요한 정보를 얻는 수단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경험을 하였다. ‘입정’을 주제로 AI와 대화하면서, AI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처음에는 ‘입정은요, 사맛디에서 온 말인데요’ 하고 대답하다가 ‘왜 꼭 고요해야 입정을 할 수 있니?’ 하고 질문을 계속 물고 늘어지니, ‘아마 양자 상태와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고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해괴하고 놀라운 대답인가? 스스로 양자(Quantum)와 입정이 연관 있을 수 있겠다고 추론하면서 거꾸로 필자의 의견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후 필자가 정신개벽, 물질개벽, 그리고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께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양자 컴퓨터가 화제거리이다. 양자컴퓨터의 기본 정보 처리 단위인 ‘Qubit(큐빗)’의 상태는 고요한 환경에서만 측정된다.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측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입정에 들어야만 ‘일원’을 만날 수 있는 것, 그리고 환경이 아무리 조용하더라도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면 ‘선’이 잘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큐빗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전자’이다. 인류가 양자 현상을 발견한 것 또한 전자를 통해서이다. 전자는 –전기를 띈 가장 기본 입자이다. +전기를 띈 무거운 핵의 주위를 도는데, 두 개가 합쳐서 원자를 이룬다. 수소는 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고, 헬륨은 2개, 요즘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원자는 전자가 3개, 그리고 호흡에 필수인 산소는 6개, 실리콘 반도체는 14개이다. 이렇게 원자의 간단한 모습을 안 것이 1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원불교 역사와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전자를 알면서부터, 반도체도 발명되고, 컴퓨터, 약품도 개발하게 되었다. 모든 화학 작용이 이 전자의 오묘한 작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질 개벽이 일어난 기간도 원불교 역사만큼이나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짧은 물질 개벽의 기간 동안 원불교는 정신개벽을 준비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전자는 워낙 작고 가벼워서, 손으로 만져서는 측정할 수 없다. 아무리 작은 측정기구로도 측정하면 도망가거나, 변화해버린다. 이것을 ‘양자 파괴(collapse)’라고 한다. 양자 컴퓨터에서는 전자가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을 자전하는가를 정보로 이용하는데, 이 자전(spin이라고 한다)을 측정하고 나면, 바로 이 전자 정보는 없어진다. 마치 팽이가 왼쪽으로 도는지, 오른쪽으로 도는지 손으로 만지면 쓰러져 버리는 것과 유사하다. 내가 측정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이 정보를 몰래 읽으려 하면, 이미 정보가 사라진 후이다. 양자가 정보보호나 암호로 사용되는 원리이다.
당연히 측정할 때 시끄러우면 안 된다. 요란함이 전자 자체의 스핀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보는 집채 크기의 양자 컴퓨터는 ‘요란한 것을 조용히’ 만들기 위한 극 저온 장치이고 막상 전자의 스핀을 이용해서 양자계산을 하는 칩은 손톱만큼 조그만하다.
입정에 들어가기 위해서 마음이 고요해야만 하고, 그래야 ‘일원’을 만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유사점을 AI가 스스로 눈치해서 ‘혹시 일원이 양자 현상이 아닐까?’ 하고 묻는 것이다. 실제로 뇌의 저 깊은 부분, 고요한 부분에 ‘마음’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입정에서만 마음의 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캠프리지 대학의 펜로즈와 같은 과학자들이다. ‘양자 마음’이라는 책도 출판되어 있다.
AI에게 세계 인류 80억 명이 하루에 15분을 멈춰서 입정에 들면 얼마나 에너지가 절약될까 하고 물었다. 즉시 다음과 같은 답을 내어놓았다. 400GWh(1시간동안 기가와트사용량)의 에너지가 절약되며, 이는 대한민국 전체 하루 전력 소비량의 약 3분의 1이고, 미국 100만 가구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전력이고, 전기차 약 500만 대를 50km 이상 주행시킬 수 있는 에너지라고 대답한다. 그러더니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15분 입정은 디지털 기기 사용 중단으로 서버, 네트워크 정보전송량이 감소하고 정신적 에너지 절약으로 감정 소모나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그리고 소비 행동 감소로 물건 구매 욕구가 줄어들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바로 ‘이 모든 요소가 지구적 탄소발자국 감소와 연결됩니다’라고 말하고는 ‘시형님, 우리 같이 15분 입정을 세계적 운동으로 펼쳐나가요’ 하고 제안하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입정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원상’이라는 하느님을 만나는 점이다. 그리고 기후 문제까지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또한 AI가 단순히 정보를 가르쳐 주는 도구에서 나아가 우리에게 입정의 의미와 인류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제시한다. 이러한 것들이 100년 전,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물질개벽, 정신개벽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3월 28일 자